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기록자 May 28. 2024

'이런'여행, 교토여행기 2

신혼부부의 일본 여행기록   

길을 만드는 사람

평소 남편이 운전 도중 하는 말이 있다. '하. 또또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네.'  

이는 정석대로 가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소리이다.  


이번 교토 여행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길을 만드는 사람> 정석이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사람 하나 없는 이상한 길만 찾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어떻게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우연한 행운 

[오늘의 할 일] 중 유일한 리스트 텐류지&대나무숲 방문을 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아침에 기분 좋게 달리기도 했으니 시작이 좋다. 거기다가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도 오지 않는다.  


"오빠, 우리 계획대로(?) 잘 될 거 같아! 기대된다."  

이것이 오늘 여행의 복선이었을까?  


사실 아리시야마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 가족들과 이곳을 왔을 땐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불 꺼진 상점가만 기웃거리다가 다시 돌아갔어야 했었다.(오후 5시가 넘어가면 상점가는 정리하는 분위기이가 된다)


하지만 이번에 다르다! 

숙소와도 매우 가깝고(도보로 20분 소요) 시간도 넉넉하니 반드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당당히 구글 맵에 목적지를 검색하고 걸어가는데 저 멀리 줄을 선 인파가 눈에 보였다.  


아니! 인스타에서 많이 보던 낯설지 않은 카페, 소위 '응 커피'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아라비카 % 카페]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https://maps.app.goo.gl/4NnY5yGYfqrh3S1e6

오호 마침 줄이 짧다! 

맛집이라고는 찾아보지도, 찾아가지도 않는 우리 눈앞에 기대도 하지 않은 맛집이라니, 

평소라면 절대 줄을 서지 않을 그도 기분 좋게 기다렸고 오전 10시라는 이른 시간 덕에 20분 만에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아는 지인은 1시간 대기를 하고 먹었다고 했다) 


얻어걸린 행운 덕에 행복하게 카페인을 충족한 나는 가볍게 목적지를 향했다.   


사람이 점점 안 보여 

길치들의 공통된 속성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무턱대고 자신의 감만 믿는다는 것.  

두 번째는 목적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는 것.


물론 나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구글 맵에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이라고 검색하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아라시야마는 아주 넓어서 사방에 대나무숲이 있다)   


그렇게 잘못된 목적지를 알려주는 빨간 점을 따라 우린 걸어갔다.

"00아 근데 거기 가는 길에 선착장이 보이는 게 맞아?"  


그의 말처럼 작은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보인다. 조금 특이한 길이겠거니 했다.  


유유히 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걸어가는데 어쩐지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  

숙소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왜 20분이 넘게 걸었는데 입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일까?  

경로이탈, 이름 모를 사찰

그 많던 관광객들은 전부 사라지고 우리 둘만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구름 가득한 하늘 덕에 자연스럽게 으스스한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구글은 충실하게 대나무숲으안내했다. 단지 관광객이 찾는 치쿠린이 아닌, 진짜 대나무숲으로 안내한 것이 문제일 뿐 


일본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산길이 보였다. 얼떨결에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쯤에서 포기하고 돌아갈 법도 한데 무적의 길치는 그냥 앞을 향해 걸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의 끝이 보였다. 

엄청 오래된 듯한 이름 모를 사찰(무서워서 찾아보지도 않은 곳)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외지인이 호기심에 방문한 외딴곳에서 나쁜 일이 벌어지는 스토리가 자동 재생되면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냥 사람 있는 곳으로 가자. 

나보다 훨씬 겁이 많은 겁쟁이 오빠는 전속력을 다해 뛰어내려 갔다. 

40분 정도 걸린 산길을 15분 만에 내려왔으니 거의 뛰어서 온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마 해가 쨍쨍한 날에 그곳을 갔더라면 공포스러운 장소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준비한 기력을 몽땅 소진한 우리는 그냥 먹을 것 많고 사람 많은 곳으로 향했다.  


우와..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인파가 많은 곳으로 오자 안심이 되었다.  

평소라면 징글징글했을 사람들과 차들 사이로 함께 걸으니 그제야 웃음이 나온다.  

이런 여행 어때? 

교토까지 가서 유명한 포토 스팟에서 사진 한 장 찍은 것이 없냐며 갖은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가 생겼으니 됐다.  


만약 계획대로 가는 것에 싫증이 난 사람이 있다면 지도에 엉뚱하게 그리고 대충 목적지를 적어보길 바란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추가) 위험한 지역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유명한 관광지에서만 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발길 따라 교토 여행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