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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nie Jul 20. 2020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I love you more than I hate you."

"Born in a hotel room, and God damn it, Died in a hotel room!"


미국이 낳은 극작가라 칭송받는 유진 오닐의 마지막 말이다. 텅 빈 쓸쓸한 호텔방에 메아리로 맴도는 것과 같은 그의 문장은 언뜻 보기에는 지극히 미시적인 개인의 독백으로 보이지만, 『밤으로의 긴 여로』를 관람한 관객들은 그것이 유진 오닐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되뇌인다. 『밤으로의 긴 여로』의 등장인물들은 위의 문장을 개개인의 삶으로 형상화한 형태를 지닌다. 네 명의 타이론 가족들은 함께 있지만 동시에 떨어져 있다. 가족이라는 원 안에 있지만 각자의 각진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인물들은 서로의 영역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시를 찔러 넣으며 피를 토한다. 혹자는 이러한 인물들의 속성을 'homelessness'라고 표현한다. Homelessness, 즉 '고향 상실'과 그로부터 오는 고독이 인물들의 속성이며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 미국의 대표적 극작가 유진 오닐의 자전적 작품이다. 무능력한 아버지, 마약중독자 어머니, 알코올중독자인 형을 작품의 인물들로 그대로 녹여내었다.

연극의 역사에서 손에 꼽힐 만큼 비극적인 가족사를 지녔던 유진 오닐이 내린 결론이 그저 '고독'이라고 단순히 칭하기에 이 연극이 시사하는 바는 약간 다르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 드러난 캐릭터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이란 '고독한 낙엽'보다는 '봄철의 나뭇잎'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그의 고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봄날의 나뭇잎은 따가운 바람에 상처를 입는다. 겨울철 바람처럼 매섭지는 않지만 사소하게 부딪히는 바람에 나뭇잎은 구멍이 나고 색이 바랜다. 타이론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가족의 비극에 있어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갈 곳을 잃은 답변과도 같다. 겨울 바람처럼 요란하고 악랄한 잘못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사소하고 순간적인, '죄'라고 명명하기에도 어색하게 삐끗거렸을 뿐이다. 제임스 타이론은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이었기에 인색한 성품이 몸에 배어 싼 값에 의사를 불렀을 뿐이다. 메리는 열렬한 사랑의 감정에 휩싸여 제임스 타이론과 결혼을 했을 뿐이다. 어린 제이미는 유아적인 아이의 질투심에 휩싸여 유진의 방에 들어갔을 뿐이고, 에드먼드는 형 유진이 죽은 뒤 몸이 약하게 태어났을 뿐이다. 개개인을 두고 보면 모두 충분히 이해의 여지가 있는 실수를 한 것뿐인데, 그 사소한 것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그 상처가 얼키설키 엮여 가족의 최후를 비극의 결정체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거대하지 않은 것에 치이며 상처받고, 사소한 사실들로 운명이 짜이는 존재이다. 이는 그리 보드랍지는 않은 봄바람에 생채기가 남는 나뭇잎과 같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뭇잎은 나뭇잎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생명을 잃는다. 그러기에 나뭇잎은 나뭇가지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 때문에 잎은 끈질기고 본능적으로 가지에 붙어 있으려 애를 쓴다. 인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아무리 인간이 소외된 존재이고, 가족 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지녀야 한다고 해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그들은 가족 안에서 존재하며 생명을 얻는다. 이러한 인간과 가족에 대한 개념은 극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세 남자들은 서로를 물어뜯을 듯이 비난하면서도 메리와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은 메리의 병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에드먼드와 타이론은 서로의 관념을 비난하다가도 이해하고 인정하며, 타이론은 제이미를 비판하다가도 그의 풀 죽은 모습을 보고 아버지로서 그를 보듬어 안는다. 이러한 가족 간의 애증이 가장 극대화된 부분은 4막에 등장하는 제이미의 대사이다. 이는 인간이 가족에게 느끼는 본원적인 감정을 가장 잘 형상화하고 있다.

"I love you more than I hate you."


유진 오닐은 어떤 심정으로 저 문장을 내뱉었는지,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문장으로 되돌아가 본다. 비참한 운명을 저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온전한 가족을 그리워함이 아니었을까. 그가 당신의 생애 내내 아파하고 갈망하고 깨달은 것은 바로 당신이 상처에도 가지에 붙어 있는 봄의 잎과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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