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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Feb 05. 2024

이상하다? 거꾸로 발전하는 세상 - 기술의 쓸모

에리히 프롬의 <희망의 혁명>을 읽고

 이상하다.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 혼자서 가족을 먹여살렸던 것 같은데, 요즘, 그러니까 내가 돈을 직접 벌 나이가 되어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를 봐도 혼자 돈 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혼한 사람이면 백이면 백 모두 배우자와 함께 가계 경제를 이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 벌때와 비교해보면 분명 우리나라 경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하는데, 왜 사람들은 더 많이 일을 해야하는 걸까? 우리 식구 4명 중 1명만 일하면 살만 했었는데, 이제는 2명이 일해도 세 식구 먹여살리기도 녹록치 않다니.   


 인간들 삶이야 어떠하든 기술은 늘 개발되고 세계는 항상 깜짝 놀라듯, 최근에는 챗지피티라는 것이 세상에 공개되어 세계가 다시 한번 놀랐다. 이것은 어떤 질문이든 답변하고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이로써 많은 것이 간편해질 것이라고 언론과 발명한 회사는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과연 그러한지 나도 몇 번 써보았는데, 프로그래밍 코드를 쳐달라하면 쳐주고, 세계에 가장 오래 존속한 나라를 리스트업해달라고 하면 제깍 리스트업 하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썩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근데 나한테 도움되는거 맞아?


Gerhard Richter, <Cell> (1988)


 밥을 먹기 위해서라면 호피무늬가 아닌 정말 호피 혹은 다른 짐승가죽을 사타구니에 두르고 돌도끼를 들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 목숨 걸고 맨발로 뛰어다녀야되었던 때도 있었고, 새벽같이 일어나 소한테 여물을 주고 오늘 심을 씨앗들을 정돈하며 해 뜨는 대로 30리 밖에 논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씨를 뿌려야했던 때도 있었다. 이외의 여러 험난한 때를 다 이겨내고, 우리는 현재에 아무 콘크리트로 구조된(structured) 곳 밑으로 들어가 종이 몇 장 내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카드만 보여주면 배부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고보면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인간은 참 살기 쉬워졌다.


 사슴을 사냥하고 논밭에 씨뿌리지 않아도 종이 몇 장만 건네면 먹고 살 수 있는 삶, 그런데 이런 편리함 이면에는 돌도끼 휘두르거나 씨뿌리는 행위 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도 있다. 밥집에 내는 이 종이 몇 장(돈)은 어디서 나는가? 이를 구하는 방법이야 사람들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보통은 대략 하루에 8시간 정도 원치 않은 장소에서 원치 않는 행동을 꾸역꾸역 해내는 것일테다. 사무실에 앉아서 무의미한 키보드질 마우스질을 억지로 하거나, 혹은 사업장에 서서 밀려오는 사람들 상대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반갑지 않은 반가움을 표현한다든지. 그러면 사냥하던때나 씨앗 뿌리던때나 인간은 살기 쉬워진 게 맞는가 싶기도 하다. 그것들 보단 낫지 않은가.


Blitzwork and Henry Scolfield, Coke CF <Masterpeice> 중 한 장면 (2023)


 1960년대에 프롬이 상상한 기술 개발의 미래 중 하나는 기술 개발로 인하여 자동화된 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기술이 인간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의 호기심과 정복 욕구는 끝이 없어 그다지 필요하지 않더라도 괜히 한 번 연구하고 만들어보기라도 한다는데, 안그래도 많은 염소를 복제하거나 인간의 머리를 다른 인간의 몸에 이식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예가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염소 한 두마리가 보태진다고해서, 내 머리가 다른 사람 몸에 붙는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도 말이다. 어떤 기술이든 개발하는 것에 인간은 일단 매달리고 보는 것이다. 물론, 관련 기술이 필요한 사회나 시대도 있겠지만 이러한 고상한 기술 발전 외에도 우리 인류는 더 시급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지구 반대편에 식량이 부족해서 일찍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는 기술이 부족해 괴롭고 어려운 사람보다는 다른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근래에는 무분별한 경찰수사관행과 자극적인 언론보도로 사랑받던 연예인이 스스로 명을 달리 하였다. 인기있는 가수는 사실과 달리 마약사범으로 지목을 받고 경찰서를 들랑날랑하면서 "약쟁이"라는 오명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등산로로 산책을 하던 여성은 강간계획한 남성의 무분별한 너클 폭행으로 살해당하였다. 서울 어느 동네의 왕은 수많은 전세 세입자들의 전세대금을 사기로 가로챘고 그 탓에 이 중 몇몇 세입자들은 삶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고통을 사람들은 앓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술을 위한 기술 발전에 인간이 부품이된 사회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프롬은 주장하였다. 그런 사회에는 위와 같은 고통이 일어나지 않을까? 적어도 덜 일어나도록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경찰의 수사매뉴얼에 근거하여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과도한 포토라인 세우기를 막는다거나,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의 기사가 묻지마 복사 붙여넣기식으로 송출될때에 유사도에 따라 기사를 내지 못하게 한다든지. "삐, 당신의 기사는 이미 95% 일치하는 기사가 있어 포털에 내걸 수 없습니다."


일각에선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대한 무분별한 노출, 경찰 수사 과정의 과도한 공개 등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세계일보 기사 중


 운전자 없는 자동차도 혼자 달리는 세상에서 음주운전 사고는 아직도 넘쳐나고 사람들은 눈 먼 차바퀴에 목숨을 잃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기술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포털 메인에는 출산율이 또 역대 최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저 먼, 그러니까 정말로 호랑이가 담배피고 그런 때의 과거부터 지구를 지켜보던 외계인이 요즘을 보면, 더 이상 사슴 사냥으로 먹고 살아도 되지 않는 편한 시대의 지구에 왜 사람이 없는걸까하는 생각할 법하다.



참고자료 : 세계일보, “이선균, 수사과정 과도한 노출·무분별한 허위사실 유포 부담감 컸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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