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0
나는 허약하고 후줄근한 여자 카메라공이다. 내 인생이 카메라공으로서는 완전히 끝장났다고 생각한 적도 수백 수천 번이다. 그럼에도 내 생각과는 반대로 계약에 계약을 거듭하며 이 생의 얄팍한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다. 내가 울부짖은들, 천사의 서열에서 누가 그 소리를 들어주랴?(릴케)
천사보다 급한 건 현재. 우리는 속았다. 미래는 없다.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나아지려면 미래에 대한 상상을 거두어야 한다. 친구들이여, 부디 다음 순간을, 사료처럼 기다리지 말자. 내일을 포기하자. 미래를 과식하지 말자. 우리는 미래에 의해 사육당하는 거대한 짐승이 아니다.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느니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바로 그 상상 때문에 지금 우리가 불행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만 해도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미래에 보증금을 걸었다면 그건 백 퍼센트 사기다.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맹세할 수 있다. 미래의 여분을 남기지 말자. 그것은 오기 전까지는, 정말로 없는 것이다.
때로 내가 과거를 미래로, 미래를 과거로 혼동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나의 앞날에 남은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처럼 느껴진다. 미래는 모래알처럼 스르르 흘러내리고 과거는 머나먼 별처럼 아득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진정으로 가닿기 어려운 것은 과거 아니던가? 머나먼……. 내 경험에 의하면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과거를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잊어야 한다. 과거는 이미 우리를 떠나갔다. 미래는 망상이다.
친구들이여, 내가 천덕꾸러기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다름 아닌 나의 직업 때문이다. 카메라 옵스큐라. 어두운 암실을 비추는 한 줄기 빛. 진실은 세상의 상하좌우를 반대로 바라보는 거라고 카메라는 알려준다. 역상. 우리는 우연히 찍힌 것을 예술이라고 외치고 싶어한다. 우리는 삶을 좋아하면서 싫어한다고 외치고 다닌다. 김수영 시인도 이렇게 말했다. '집 없는 걸인이여, 집이 여기에 있다고 외쳐라'. 시인과 카메라공은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나저나 또 손목이 나갔다. 오른손에 힘을 제대로 주입할 수가 없다. 팔 전체가 낡은 스프링처럼 탄성을 잃었다. 마지막 남은 치약처럼 손목을 쥐어짜내어 카메라를 지탱했던 당연한 결과다. 오, 잃어버린 손목이여, 나의 무기여. 나라는 인간은 늘상 위악적으로 지껄이고 다니는 말과는 반대로 내 직업을 사랑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나는 핸드헬드를 왜 그리도 좋아했던가? handheld. 카메라를 삼각대에 장착하지 않고 손에 들고 촬영하는 기법. 핸드헬드 슈팅은 불안정하지만 생동감을 준다. 수많은 슈팅 중 가장 빛나는 단 한 번의 슈팅에 가 닿기 위하여 나는 야만하고 방종하게 흔들리며, 모종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마치 흔들리는 피사체가 아니라 흔들림 자체를 좀 보라는 듯이. 흔들리는 나의 존재가 진짜 피사체라는 듯이. - "여기, 날 좀 봐줘요."
나는 업계의 퇴물답게 AI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AI라는 대단한 작자 때문에 내 주변의 촬영/편집 감독들의 일거리가 심각하게 줄었다. AI가 자신에게 적응하지 못한 자들의 밥그릇과 일자리를 파렴치하게 빼앗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AI에 물든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친구들이여, 하고 우짖으며 탄식하지 않는다. 더없이 스마트한 친구가 언제나 주머니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과물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으며 반박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봐도 무언가가 빠져 있다. 그게 뭘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외침이다. 역상이자 반항이며 전복이다. 그들이 AI에게 자막 내용을 질문할 때, 나는 시를 찾아본다. 그들이 AI에게 디자인을 질문할 때, 나는 기획 의도를 다시 생각한다. 나는 음악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이미지에 비디오의 날개를 달아준다. 세상의 모든 주도권. 그중에서도 특히 시간의 주도권. 나는 AI에게 (순수하게 기술적인 것이 아닌)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자에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청탁해야 한다. 부리면 된다.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선택과 배열, 그리고 어두운 암실을 밝히는 한 줄기 영혼. 주머니 속 미래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스프링 나간 옛날 사람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기계는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이 종내 인간의 외침마저 집어삼킬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읽고 쓰는 내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월급날 빵 한 봉지 사 오지 않은 가장처럼 나 자신에게 몹시 미안해졌다. 이 너덜거리는 손목으로는 책을 휙휙 넘길 수도, 오종종하니 육필 쓰기를 즐길 수도 없는 것이다. 돌연 - 영혼의 마비. 마르셀 프루스트. 그는 책을 일종의 광학기구라 하였던가. 그래, 광학기구. 내 영혼의 카메라. 세상을 읽고 쓰는 대물 렌즈. 카메라를 쥐는 내 손목은 스프링이 나갔고, 내 존재의 탄성은 몹시 헐거워졌다. 오, 울고 싶어라. 나는 이대로 끝장이란 말인가. 시여, 흔들림 없이도 흔들리는 시여, 오늘 밤 내가 의지할 곳은 너뿐이구나. 아아, 천사 하나가 나를 안아주는구나. 시는 나의 멋진 양철 차양이구나.
내가 울부짖은들, 천사의 서열에서 누가 그 소리를 들어주랴?
설혹 천사 하나가 나를 불현듯 품에 안는다 하여도
나는 그의 보다 강력한 존재에 소멸하리라.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 내는 두려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우리가 그처럼 찬탄하는 것도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일 따위는 멸시하는 까닭이다.
모든 천사는 두렵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제1비가> 中
목사여 정치가여 상인이여 노동자여
실직자여 방랑자여
그리고 나와 같은 집 없는 걸인이여
집이 여기에 있다고 외쳐라
하얗게 마른 마루 틈 사이에서
검은 바람이 들어온다고 외쳐라
너의 머리 위에
너의 몸을 반쯤 가려주는 길고
멋진 양철 차양이 있다고 외쳐라
-김수영, <가옥찬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