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500일

무엇이 나를 살아남게 했을까

D-268

by 세라

직장인일 때 누릴 수 있는 이점 중 하나는 내가 '끌리는 곳'에 지원해 볼 수 있다는 거다. (가난해도 취향은 있다고요!) 솔직히 이건 사치에 가깝다. 백수일 때는 다르다.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지원해야 한다. 경력이고 나발이고! 하물며 건강상의 이유라고 해도 웬만해서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일일 알바든 뭐든 괜찮으니 일단 한 번만 써보기만 하시라니까요! 장담합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걸요? 내가 부끄럼이 좀 많아서 그렇지 실전에 강한 타입입니다, 킥킥, 나 고독사도 싫고 아사도 싫단 말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그 사치를 마음껏 누리라!)


낙방.


괜찮다. 원래 난 좀 게걸스럽게 살아왔다. 뭣해도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구걸하듯 내밀었던 수백 개의 이력서는 꿈을 향한 아름다운 도전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한 인간을 구출하기 위한 마구잡이 슈팅이었다. 뭐라도 걸려 보시지, 탕 탕! 그래도 나는 안간힘을 써 왔지. 그거야말로 내 인생의 정수였다. 정말 그것뿐이다. 나는 수학 과외와 플룻 연주 알바를 하면서 어깨에 대걸레를 걸치고 다니며 오피스텔 청소 알바를 하기도 했다. 토스트를 굽고 맥주도 나르면서 삶이란 게 지루하다는 듯, 묘지 앞 꽃집 아가씨가 되기도 했다. 잊어버릴 뻔했는데 바에서 피아노 연주 알바를 하다가 역겨운 인간들 때문에 그만둔 적도. 킥킥, 정말 그것뿐…… 그리고 나는 지금 15년 차 PD다. 이것들 중 무엇이 나를 살아남게 했을까? 뭐라도 닥치는 대로 시도해야만 했던 나의 안간힘이? 아니면 안간힘 사이사이를 골수처럼 채워 넣은 나의 낙담과 나의 절망이? 이 모든 것이 생존을 위한 무수한 가지치기의 일부라는 점에서 나는 다윈에게 동의한다.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기초로부터 시작해 고상한 정점에 이르는 진화의 사다리에서 미리 예정된 최종적인 걸작품이 결코 아니다. 단지 무수하게 가지치기를 해 온 진화의 관목에서 제대로 자라는 데 성공한 곁가지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시도했던 부시고 겨운 일들의 귀천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내가 지금 PD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수많은 슈팅 중 맞아떨어진 우연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곁가지 많은 나의 삶이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관목과도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저 남자 어때요? 대기업 직장인에 연봉도 1억 얼마, 그만하면 여자인 당신은 일 안 해도 되잖아요? 아 예, 그렇게 일이 하고 싶으시다면 취미로 하시면 되죠. 말단 사원님, 생각을 좀 바꿔 보세요, 당신 지금 가릴 때 아니에요, 낚으면 땡잡은 거라고요! 휴 그래요 알겠어요, 그러면…… 저 남자는요?


제안은 고맙지만, 나는 그들이 만물을 시세로 따지는 부동산 업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땡잡는다는 건 뭐지? 아니 정말, 땡이란 건 도대체 뭔데!





열심히 일해도 여느 곳에서처럼 소모되고 있음을 느끼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쓸데없는 소리도 들어가면서, 평범하고도 치열한 한 주가 끝났다.


그토록 애쓰고 노력하는 나는 누구였나.

일요일 오후, 여름 더위를 피해 동네 카페에 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퇴위하는 왕처럼'(페소아의 표현) 책만 읽는다. 권태와 몽상을 내려놓고, 읽는다는 행위의 고귀함만을 들고…….


한참을 책을 읽다 시선을 들어 보니 책상 앞의 하얀 벽이 느닷없이 파란 바다로 바뀌어 있다. 새소리, 바람 소리, 파도의 갈퀴가 모래를 훑고 가는 소리소리가 들려오는 듯…… 이 환시환청은 나의 직업과 관련된 일종의 편집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없는 공간을 슥슥 잘라 붙이고 공간의 채도를 마음대로 높이고 낮춘다. 오오, 목격자여, 부디 나를 신고하지 말아주오. 이런 상상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동적이다. 시간과 공간의 재배열, 이미지의 자유자재함, 꿈의 환유! 현실이고 가상이고 가리지 않는다. (부디 정상 참작해 주시길.)


문득 아득하다.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인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