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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외로움이 외로움을 꺾는다

D-261

by 세라

일요일 오전, 동네에 빵과 커피를 사러 나갔다. 입추가 지나서인지 왠지 하늘도 조금 높아진 것 같고, 더위도 한층 견딜 만하다. 문득 구름처럼 지나가는 생각. 나 좀 외로운가.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은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자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외롬이 무엇인지 너무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흰 구름 지나간다. 움은 저런 식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일까. 떵떵거리며 고독을 내세우고 다녔던 날들도 조금 부끄러워진다. 고독도 여름처럼 무한은 아닌가 보다.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고집스럽게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아직 외로운 시간을 포기하지는 못하는가 보다. 한동안 책을 읽다가, 짬을 내어 딱딱하게 굳은 어깨와 다리를 풀어준다. 나는 외롬에 대해 너무도 능숙한 것이다. 햇살 스며들어온다. 정념 쏟아진다. 내 삶에 이보다 좋은 날이 있었나? 그저 소소한 만족감이라기보다는, 행복의 최대치라 해야 할 것 같다. 이보다 특별히 더 좋은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다리를 다 펴지도 못했는데 자취방이 꽉 찬다. 이제 내 몸도 그 이상은 펴지지 않는다.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여름 햇빛이 실내에 오래 있어 습해진 나의 영혼을 쨍하게 말려준다. 오늘은 도라지꽃과 백일홍, 무궁화에 홀려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그러나 좋음으로도 싫음으로도 들뜨지 않는다. 제대로 가든 잘못 가든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이제 아는 게다. 땀 흐른다. 어느새 외로움도 한 풀 꺾인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꺾었다. 매미 소리 빽빽하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게다. 이 시기가 지나면 가장 뜨거운 여름도 한 풀 꺾인다는 것을. 이토록 열없이 외로운 날들이라도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여름인 것을.




여름은 여름마다 돌아오는 줄 알았다. 끝도 모르고 뜨거워지는 것이 여름의 힘듦인 줄만 알았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힘껏 싫어했던 나의 여름…… 가장 뜨거운 여름은 지나갔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오후에 거미줄을 헤치고 숲 속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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