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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가장 따뜻한 '듣지 않음'

D-225

by 세라

나는 엄마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엄마는 다소 냉정하고, 단호하며, 얼음처럼 아름다운 사람. 나는 엄마와 달리 냉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수더분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내 엄마는 나와 달리, 그랬다. 엄마는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준 적이 한 번을 없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듣지 않음'은 더 심해졌다. 내 빚보다는 엄마의 빚, 내 고생보다는 엄마의 고생이었다. 그러나 이해했다. 정말로 엄마의 빚, 엄마의 고생이 더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 완벽하게 이해됨이 나는 괴로웠다.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는 게 힘들었고, 그것이 분리 가능하다는 것도, 분리해야 한다는 것도 30대 후반에 상담을 하다가 어렴풋이 깨달았을 뿐이다.


엄마는 자식 셋을 데리고 폭력과 외도, 사이비 종교에 물든 남자로부터 독립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마흔 즈음이었으므로 지금 내 나이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어린 삼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적성에 맞지 않는 잡부를 전전했지만,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차갑고 도도했다. '듣지 않음', 그것이야말로 엄마의 가장 따뜻한 면모였던 것 같다. 엄마는 늘 말을 반복해서 했고,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조차 스스로 반복했으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그 대답을 강요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넋두리를 늘어놓는 순간이야말로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사님, 일로 와서 한 잔 하소!" 하고 까불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엄마, 엄마가 울면 나는 엄만테 엄마가 되어주고 싶더라구.


엄마는 내 가난을 모른다. 엄마는 내 절망을 모른다. 엄마는 내 그만하고 싶음을 모른다. 홀로 걸은 많은 길…… 이미 너무 멀어진…… 그래도 엄마, 엄마가 울면 내 마음은 녹아내리더라구.


나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순간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부모에게 말하는 친구들을, 고민이 생기면 부스에 들어가 부모와 통화하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기특하다며 자랑하는 부모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살 시도를 하는 자식을 손절하는 부모를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다시 삼시세끼 밥을 해 먹이는 부모를 이해했다. 살아, 이것아, 살아…… 그러므로 엄마가 울면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도 살아야지 엄마, 어쩔 수 없잖아, 엄마. 나는 엄마처럼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가까운 사람의 슬픔과 서글픔에 겨울날의 햇살처럼 취약하다. 밀랍으로 봉한 내 마음, 어느 틈으로 그리 새어 흘러렸는지.


엄마가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가 처량하다고 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운다. 보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알 수 있다.


괜찮아, 엄마.


월급날이 되는 대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도 미안하다고 했다. 큰 도움이 되어줄 수가 없어서, 사실은 나도 도움을 받고 싶은 처지라서, 미안해요.


내 꿈과 가난, 떠돌이 생활과 서글픔, 신산함, 내 삶의 악착한 울력을 엄마, 엄마는 들어준 적 없지만. 그래도 난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어.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남도의 고향, 추석에 오갈 돈까지 아껴서 용돈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누가 뭐라건, 그 무엇보다 살아남기가 우선인 순간이 있다. 아니 늘 그랬지야, 내게 시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빵이었지 않았냐.


내 서글픔보다 더 우선인 서글픔이 있다. 내 억울함보다 더 우선인 억울함이 있다.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리할 줄 몰라서, 나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엄마.


그래도 엄마, 너무 슬퍼 마소. 엄마! 그 이상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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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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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시를 읽다 우연히 위로받는다. 사과나무의 말이래서 더 기억에 남은 것 있지.


마종기, <과수원에서>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시끄럽고 뜨거운 한철을 보내고 뒤돌아본 과수원에서, 너무 많은 것, 그냥 받았어요. 나도 그리 말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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