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역카페
레이스가 달린 에매랄드 빛 원피스를 본 순간 그것을 욕망하게 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원피스의 브랜명과 가격을 알아버렸다. 여기서 나에게 주요했던 점은 원피스의 브랜드명과 가격을 우연하게 그냥 알게 되었다는 것. 지나갈 수 있던 욕망이 우연한 정보로 인해 돌아왔다.
평소에 절대 입을 일 없는 그 원피스는 말 그대로 나의 욕망이다. 옷에서 흘러내리는 기품에 현혹된 나에게 말한다.
"옷이 나에게 기품을 주지 않아."
하지만 늘 그렇듯 욕망은 설득하고 좋게 달래서는 순순히 사그라들지 않는다. 깨닫거나 비참하게 아파야 단념이란 것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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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꼬리를 물다 원피스와 비슷한 느낌의 공간이 떠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성수역에서 내려 연무장길 수제화 거리로 향해 걷다 전형적인 상가건물들 사이로 ‘ㅇㅗㄹㅡㅇㅔㄹㅡ’ 윈도우 패턴을 발견했다. 낡은 건물이지만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내는 패턴이 오르에르를 알아볼 수 있는 분명한 색이 되어주었다.
입구에서 골목 끝으로 가지 않고 커튼으로 보일 듯 말 듯 가려져 있는 오른쪽 공간으로 들어서자 주문하는 곳이 보였다.
오래된 의자와 세련된 대리석 테이블, 교회 의자, 익숙한 상가 바닥 위로 카펫이 깔려있었고, 구석구석 채도 높은 야자수 나무가 공간의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주문대 앞에 서자, 전축과 골드 메뉴판, 골드 페이퍼 웨이터를 보니 작은 곳에도 세심함이 깃들어 있는 공간이라는 잠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메리카노랑 오르그레이케이크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고 여느 때처럼 공간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건물을 골격 그대로 두어 투박한데 오르에르의 감성으로 포장한 느낌이었다. 셀프바는 심플하면서도 강조할 부분은 화려하게 강조하고 톤 다운해 오르에르의 기품이 특히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문이 없는 방으로 들어서자 블록 프린트의 멋이 살아있는 윌리엄 모리스 벽지로 도배되어있어 반가웠다.
혼자 앉기에 4인 테이블은 부담스러웠지만 손님이 적은 시간대라 자리 잡아 주문한 음료와 케이크를 맛보았다. 아메리카노는 나쁘지 않았고, 오르그레이케이크은 얼그레이향이 은은하게 나며 시폰과 크림이 잘 어울려서 좋았다.
70년대 건물에나 있을법한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정원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뒤쪽 정원은 좀 더 친숙한 느낌의 주택 같았고 곳곳에 놓인 큰 화분과 캐주얼한 느낌의 주황색, 흰색 등 색색깔의 의자와 테이블이 이전에 둘러본 공간과는 사뭇 다른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원 속 작은 공간은 정리 안됨이 오히려 정원사의 작업실 혹은 실험실처럼 느껴져 역시 디자인 기획사에서 만든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과 이어진 복도로 나와 라운지인 2층 자그마치의 샵이자 스튜디오인 3층을 구경했다. 그러다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숨은 공간을 보기도 했다. 오르에르의 요소들에도 기품은 녹아들어 있었다.
오르에르에서 기품을 배운다. 기품은 힘을 줄 곳과 뺄 곳을 잘 아는 것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피스를 사고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였다. 옷은 원래 기품을 주지 않는다. 기품이 느껴지려면 나의 생각으로 다지고 행동으로 드러나야한다. 심플해야 할 것은 심플하게, 힘을 줄 곳은 과감하고 화려해질 용기를 가지는 것이 기품있는 사람이 되는 것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의 여운을 남긴채 오르에르를 나왔다.
두 번째 성수동 공간 오르에르는
낡은 것조차 우아해 보이는 기품을 알려준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