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 카페
그런 날이 있다.
있었는지 까맣게도 몰랐던 옷을 발견한 날
싫어하던 음식이 미친 듯이 먹고 싶은 날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전자기기를 떨어트리던 날
깔깔거리며 웃다가 나도 모르게 뺨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
그날이 그랬다.
느끼해서 싫어하는 아니 싫어했었던 밀크티가 미친 듯이 먹고 싶었다.
진짜 티를 우려 만든 많이 달지 않으면서 얼음이 없는 차가운 밀크티가.
종종 밀크티를 마시러 가던 합정 시간의 공기로 향했다.
합정역에서 내려 꽤 멀다시피 걷다 보면 늘 그렇듯 어느새 도착한다. 꽤 묵직한 문을 힘들여 열면 작고 아담한 공간이 나를 맞아준다.
알아볼 수 없지만, 귀여운 글씨체의 메뉴판을 두고 고민하다 그냥 익숙한 메뉴를 시켰다.
"차가운 밀크티랑 티라미슈 주세요."
늘 앉던 독립된 안쪽 자리가 차있어 창가 자리에 슬쩍 앉았다. 구석에 인테리어 용품처럼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자, 친절한 주인분이 직접 가져다주셨다. 공간도 컵도 참 주인분을 많이 닮았다. 밀크티의 소복한 거품을 먹다보면 살구색의 밀크티를 맛볼 수 있다. 티라미슈는 다른 곳보다 좀 더 크리미 하고 빵은 에스프레소에 듬뿍 적셔져 있다. 이러니 늘 고민하다가 같은 메뉴를 시킬 수 밖에.
"나 잠시 화장실 좀."
친구와 신나게 이야기하다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려다 멈칫했다. 페이퍼타월 대신 있는 수건.
수건을 보자 마치 친구 집에 놀러 온 거 같다는 생각에 슬쩍 웃다가 네가 떠올라 버렸다.
처음으로 생긴 나만의 공간을 채울 물건으로 제일 먼저 수건부터 집던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던 너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구의 결혼식이며 산우회, 특히 축 개업이라 새겨져 있던 수건이 싫었다. 매일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시간의 공기를 내 일상에 집어넣는 거 같아 싫었고 여러 번 세탁해서 바싹 거칠어진 면이 싫었다.
너는 내가 예민하고 사치부린다며 놀렸지만 너는 알지 못한다.
입고 있던 티셔츠가 다 젖도록 세수를 하고는 뽀송한 수건으로 얼굴을 꾹 하고 눌러주었을 때의 안도감을.
나는 비로소 휴식의 공간에, 나만의 공간에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서 안도했었다.
그리고 너와 함께 있을 때 느끼곤 했던 안도감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너와 통화하면서 느낀 휴식감을.
오늘이 어떤 날이었는지 알겠다.
있었는지 까맣게도 몰랐던 너에게 선물 받은 옷을 발견한 날
싫어했지만 너로 인해 먹게 된 밀크티가 먹고 싶은 날
너랑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사진기를 떨어뜨리던 날
잊은 줄 알았던 너를 사실은 보고 싶은 날
수건에 얼굴을 파묻자 그날의 네가 떠올랐다. 그날의 공기가 나를 감쌌다.
시간의 공기는 그날의 공기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