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최승호, 2016
영화는 유우성 씨 동생인 유가려 씨의 증언 번복 대 검찰의 수사라는 대결구도로 시작한다. 유가려 씨는 재판 과정에서 오빠인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서 인정한 바가 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난 뒤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증언을 번복한다. 그녀는 국정원의 압력에 의해서, 그들의 다 해결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그녀의 오빠에 대해 거짓증언을 했다고 말한다. 유가려 씨는 진심을 다해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그녀의 오빠는 간첩이 아님을 인터뷰를 통해 얘기하지만 너무나 죄송하게도 일단 이것은 한 사람의 말일뿐이다. 국정원이 생사람을 간첩으로 몰았을까? 유가려 씨가 재판에서, 유우성 씨가 있는 그 공간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여러 질문들은 그녀의 인터뷰 하나로 명쾌하게 무시되진 않는다. 짧지 않은 전반부에서 영화는 계속해서 이쪽 말 대 저쪽 말이라는, 어느 한쪽도 완전한 신뢰를 줄 수 없는 구도를 가지고 가면서 사건에 물음표 투성의 의문들을 쏟아내게 한다. 유가려 씨는 결국 추방되고 영화는 이와 함께 말의 대결이라는 구도에 쉼표를 찍는다. 그리곤 최승호 피디는 직접 움직이면서, 행동하면서 그 자신의 질문들에, 그리고 관객 머릿속의 질문들에 답들을 찾아 나선다.
사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최승호 피디의 모습은 ‘언론인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그 한계가 없다. 그는 관련자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관련기관을 찾아가고, 실질적 텍스트들, 증거물로 채택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료들을 수집하려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움직인다. 이 과정을 영화는 따라가면서 검찰의 증언과 증거물, 검찰의 주장을 반박한다. ‘자백’이 픽션, 허구의 이야기였다면 조작된 증거들과 검찰의 기만적인 태도를 밝혀내는 일련의 과정은 ‘한국형 정의구현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백’은 너무나도 현실의 이야기이다. 한 국가에서 자행되는 노골적인 조작을 통한 폭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너무나 뻔뻔한 태도들을 보는 경험엔 영화적 희열 따윈 없고 일련의 끝없는 헛웃음과 답답한 한숨, 그리고 무기력함이 있을 뿐이다.
‘자백’은 매끄러운 영화가 아니다. 최승호 피디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그가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 함께 벽을 마주한다. 국가 안보와 연관된 기밀들, 북한과 관련한 정보와 장소들에 대한 완전한 권한이 있을 수 없는 언론인이 국가 간첩 사건을 조사를 할 때 그는 수많은 벽을 마주 할 수밖에 없고 ‘자백’은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진행은 영화의 호흡을 불규칙적으로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진행과정에 완벽히 몰입하기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오히려 지금 어떠한 일들이 서술되고 있는지, 이렇게 엄청난 사실들이 얼마나 현실인지, 실제 삶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그 삶들을 누가 파괴했는지 무력감을 통해 느끼게 한다. 실제 피해자들이 국가라는 거대한 벽을 앞에 두고 느꼈을 무기력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최승호 피디의 이 일련의 조사 과정은 그로 하여금,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너무나 영화 같은, 극적이지만 너무나 현실의 장면을 마주하게 한다.
국가정보원에게는 간첩혐의자들을 수감하고 그 혐의를 조사하는 수용시설이 있다. 최승호 피디는 그곳에 대해 알아보는 도중 한 인물을 마주한다. 그는 이름도 정확히 기록되지 못한 간첩 혐의자로 국정원 수용시설에서 조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고지 불명의 사람들의 묘지, 이름도 다르게 적혀있는 그의 묘비 앞에서 수용시설에서 그의 지인이었다는 다른 남성과 최승호 피디는 그의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고 지인 남성은 얘기한다. 최승호 피디는 그에게 딸이 있었다면, 국정원이 그가 북한에 갔었다고 말하는 날짜에 북한에 들어갔다면, 그가 그곳에 있는 딸을 만났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운다. 최승호 피디는 중국으로 가서 그의 생전 지인들의 도움을 통해 결국 그의 딸과 통화를 하게 된다. 언론과의 통화를 통해서 북한에 있는 그녀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염려하여 최승호 피디는 그녀에게 자신을 아버지의 친구라고 소개한다.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이 통화에서 최승호 피디는 그녀에게 국정원이 제시한 그 날에 아버지를 보았는지 묻고 그녀로부터 어렸을 때 헤어진 후로 보지 못했다는 답을 듣는다. 그리고 한참처럼 느껴지는 머뭇거림 이후에 그는 그녀에게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국정원에 조사를 받던 도중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한다. 이 장면은 매우 매끄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감독이 구성하고, 각본가들이 대사를 정리하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매끄러움을 목표로 하는 장면과, 어째서인지 스크린으로 옮겨져야 했던 실제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하면서 범하는 오류이다. 국정원의 조사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한 개인의 딸에게, 북한에 있는 그녀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전달하는 이 장면의 비현실적인 현실의 무게감은 너무나도 무겁고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여러 간첩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작이 밝혀지고 혐의가 풀린 그 순간 승리한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첩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망가져버린, 국가에 의해 파괴되어버린 개인의 삶들만 남을 뿐이다. 영화는 그 삶들을 마주하게 한다.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 피해자들은 삶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상처들로 얼룩졌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그 아래 권력을 쥔 개인들은 피해자들의 삶을 철저하게 그들의 입맛대로 파괴하였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너무나 많은 경우에 그러하듯이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들이 사건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너무나 가관이다. 권력의 자리에 있던 자들은 그 권력을 이용해, 그들이 말하는 ‘국가’를 위해 간첩으로 만들기 ‘유용한’ 개인들의 삶을 파괴하였다. 그들이 벌인 말도 안 되는 악행을 최승호 피디와 같은 사람들이 엄청난 노력으로 밝혀냈을 때 어째서인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편하고 안락한 삶을 이어나간다. 사과라도 받아보려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들은 돈과 권력으로 고용한 사람들로 하여금 막아 세운다. 그리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우리랑 상관없는 얘기잖아요”
지금 대한민국은 아주 시끄럽다. 현 정권의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로 거리로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현 정권에 대해 개탄하고 조롱하며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저런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인 것은, 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현재 야당이 정권을 얻게 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가 끝나고 연도별로 정리되어 올라오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국가폭력의 충격적인 기록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자백’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가의 입맛대로 이용하기 유용한 개인의 삶을 파괴시키길 주저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나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고한 현실의 개인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상처와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이 나라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