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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석 Feb 28. 2017

공간을 찾아 떨리는 시선

<문라이트> 배리 젠키스, 2017

공간. 그리고 무게. 문라이트를 보며 머릿속에 맴돌던 단어다. 리틀, 샤이론. 작은 소년 샤이론의 삶은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 그리고 학교. 그리고 두 공간 모두에 그의 것은 없다. 집은 철저히 엄마 폴라(나오미 해리스)가 지배하는 있는 곳이고 학교는 그를 밀어내는 힘으로 채워진 곳이다. 샤이론은 자신을 괴롭히는 무리에 쫓겨 열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숨는다. 이곳은 그를 잠시 지켜줄지 모르지만 언제 위협이 들어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공간이다. 그리고 그 위협은 후안이라는 모습으로 들어온다. 후안은 방의 창을 말 그대로 파괴하고 들어온다. 그는 샤이론을 괴롭히던, 그의 공간을 마음대로 들어오고 짓밟던 무리와 너무나 닮은 모습을 하고 샤이론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가 묻는다. 뭘 하고 싶니, 무엇을 원하니. 샤이론 너는 누구니.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과 후안(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은 무척이나 위태롭다. 샤이론을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이 ‘시선’은 그의  불안정한 눈빛과 공명하듯 흔들린다. 카메라는 마치 샤이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의 그림자처럼, 그를 비추는 거울처럼, 그를 닮은 시선으로 그와 그의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화면에 벽을 부수고 들어온 자. 샤이론이 겪은 위협들과 닮았지만 다른 자. 후안은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구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힘으로 그 구역을 지키는 사람이다. ‘리틀’이라고 불리는 소년에 비해 거대한 체구와 함께 후안은 시종일관 어떤 무게감을 뽐낸다. 후안은 이 무게감으로 불안하기만 한 샤이론의 추에 안정감을 준다. 물에서 머리를 받쳐주던 그 손처럼 후안은 그의 공간에서 샤이론을 지탱한다.

소년은 자라고 그의 몸은 커지지만 그의 공간은 여전히 불안함으로 가득하다. 샤이론(에쉬튼 샌더스)에겐 그가 순간에 자신 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기도 하지만(후안, 케빈과의 해변) 다른 사람에 의한, 자신의 무게중심이 부재한 공간은 결과적으로 그의 공간일 수 없다. 그 소년이 후안과 너무나도 닮은 ‘블랙’(트레반테 로데스)이 된 것은 그의 말처럼 필연(meant to be) 일지 모른다. 블랙은 그의 무게감을 가진 구역의 지배자다. 그의 공간은 더 이상 불안감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아는 우리와 케빈에게 블랙은 전혀 ‘샤이론’ 답지 않은 모습이다. 블랙은 끊임없이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강화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장난을 가장한 위협을 하고, 노래를 크게 틀고 다니지만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리고 케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블랙의 공간은 다시 한번 흔들린다.     


리틀이었고, 샤이론이었으며, 지금 블랙인 이 인물. <문라이트>는 한 소년이 블랙이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일까. 그렇다기에 블랙은 후안의 모습을 연기하는 샤이론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기한다는 것은 소년이 아직 진정한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는 것인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케빈의 말에 블랙은 대답한다.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리틀, 그리고 샤이론은 소년이 선택한 모습이 아니다. 그의 영향력이 없는 공간에서 그에게 주어졌던 이름들이다. 블랙은 어쩌면 소년의 첫 번째, 혹은 여러 번 중 지금 그가 선택한 모습이다. 선택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가 지금 어떠한 모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블랙에겐 그렇다.     

<문라이트>를 퀴어영화라고 규정하는 것은 망설여진다. 동성애라는 정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는 극을 이끌어가는 테마라기 보단 소년을 흔드는 힘과 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가깝다. 폴라는 소년에게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관계였고 후안은 자신의 구역에서 샤이론에게 공간을 주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져 버린 관계이다. 케빈은 샤이론과 함께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을 공유했지만 그의 행동으로 그것을 파괴한다.(이것이 자발적이었는지는 결과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이는 샤이론으로 하여금 자신을 억누르는 곳에서 탈출하게(끌려가는 방식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만든다. 블랙의 공간이 케빈의 전화를 받고 흔들리는 것은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가뒀던 곳에서 공간을 나눴던, 하지만 그것을 파괴하고 탈출하게 만든 그 기억의 힘 때문이다.     


달빛에 푸르게 빛나는 어린 후안을 보고 누군가가 그에게 블루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리틀은 그래서 블루가 되었느냐고 묻는다. 후안은 그에게 언젠가는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선택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블랙은 리틀이었던, 샤이론이었던 곳으로 돌아온다. 그를 끊임없이 흔들던 곳들과 마주하지만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불안하게 요동치지 않는다. 블랙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엄마를 용서한다. 그리고 케빈을 만나러 간다. 식당에서의 재회 후에 그들은 차를 타고 케빈의 집으로 향한다. 케빈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블랙은 그와 케빈의 공간이었던 해변을 마주한다. 한때 그에게 주어졌지만 파괴되었던 공간, 하지만 그는 쓱 한번 시선을 줄 뿐이다. 세 마디를 이어서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그의 입에서 케빈을 향한 진심이 차분하게 흘러나온다. 그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달빛이 비치면 그는 그의 색으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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