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석 Apr 19. 2017

사랑이라는 안일한 답.

<나의 사랑, 그리스>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2015

<나의 사랑, 그리스>는 그리스 출신 배우이자 작가인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3명의 그리스인. 그리고 3명의 외지인. <나의 사랑 그리스>는 여러 문제로 충돌하는 그리스라는 공간에서의 만남들을 그린다. 각자 다른 조건 속에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이들을 영화는 병렬적으로 그리며, 그리스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보여주려 한다.      

<나의 사랑, 그리스> 속 3개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리스는 아주 혼란스러운 공간이다. 심각한 경제위기로 그리스인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이러한 힘든 상황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난민들의 유입이 겹치자 이민자들에 향한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이러한 분노와 폭력의 상황 속에 3개의 사랑이야기를 제시하며 분노의 감정을 비난하고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가지는 힘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 힘에 대한 예찬 외에 다른 말은 하지 못한다.     


영화가 그리는 관계들은 다른 가벼운 로맨스 영화 속 관계들과 닮아있다. <나의 사랑, 그리스> 속 관계가 맺어지는 방식, 그리고 그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상투적이라 할 만큼 기존의 영화들을 답습한다. 이러한 가벼움은 영화의 배경에 해당하는, 무게 있는 얘기가 시도될 때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이러한 괴리감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플롯과 그에 상응하는 음악적 효과로 극복하려고 하지만 이는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공간 사이를 더 분절시키고 만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지독하게도 요소들이 공유하는 공통분모에만 집착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그 공통분모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시키고 하나의 이야기로 나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요소들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영화는 각각의 서로 다른 관계들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절대적 요소로 묶으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외에 상관관계를 따지기 어려운 그리스의 신화를 가져와 그 매듭에 힘을 실으려고 한다. 영화는 특수한 상황을 제시하지만 그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사랑이라는, 혹은 정의라는 단어의 힘에 기대어 이야기를 성립시킨다.     


영화는 ‘진실된 사랑’의 힘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혼란의 그리스를 돌파하려고 한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탐구가 결여된 체 갈등을 선과 악의 영역으로 넘겨버리고 절대적인 가치의 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나아간다. 결국 각각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수렴시키려는, 영화의 노골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파편화된다. 감동이 있어야 할 자리엔 도무지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게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