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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석 Jun 30. 2017

인간과 환경, 그 사이를 고민하는 시선들 (2)

제 14회 환경영화제

* 이 글은 환경영화제에 참석해 느꼈던 것들을 기록한 두 번째 글이다. 일상에 치이고 기말고사에 치이다 보니 어느새 환경영화제가 막을 내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또 시험 끝났다고 쉰다며 일주일이 지났다..이제 7월이다..나란 인간의 게으름이란....) 미리미리 작성하려고 했던 글을 이제야 마무리하게 되어서 많은 자괴감이 들지만 5월 22일부터 영화제 마지막 날까지의 3일 동안 만났던 영화들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나열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당신과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서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것과 우리의 관계는 지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5월 18일 이화여대에서 개막작 <유령의 도시>와 함께 문을 연 서울 환경영화제가 24일 <종말의 시대>와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브런치 패스’를 통해서 영화제 프레스 아이디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나는 주로 학교 수업 이후의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영화들과 만났다. 환경, 특히 환경운동에 무지한 나에겐 그 단어들을 생각하면 통상적으로 떠오르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있었다. 무심결에 그런 이미지들을 기대하며 만난 15개의 작품들은 그런 이미지들에 갇히지 않는, 더 큰 맥락 속의 환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배경이 되는 ‘환경’, 영화들 속 카메라는 환경을 고민하다 필연적이라는 듯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었고 그 공간에서의 상호작용, 나아가 삶 자체를 탐구하고 있었다. 그러한 고민들과 마주하는 것, 영화라는 형태로 감독들이 탐구한 ‘환경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두근거리는 경험이었다. 단편들을 포함한 총 51개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지 못한 것은 굉장히 아쉽지만 이 글을 빌려 내가 만날 수 있었던 15개의 작품들을 통해 느꼈던 두근거림 들을, 그들의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5/22 <위기의 9시간> Robert Kenner     

<위기의 9시간>은 아칸소 주 핵미사일 사일로에서 발생한 ‘실수’를 재구성한다. 아칸소 주 전체를, 아니 미국 전역을, 더 나아가 지구를 초토화시켰을지 모를 이 치명적인 실수를 영화는 그 9시간의 당사자들 각자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핵탄두의 위압감은 3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현재의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Command and Control이라는 영화의 원제가 아주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Human Error'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미 국방부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미사일 기지에서의 사고를 한 개인의 실수의 영역으로 떠넘긴다. 영화는 사건의 본질을 회피하고 한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미 국방부를 비판하는데 나는 더 나아가 그들이 사용한 human error이란 단어의 사용이 핵무기에 대한 인류의 통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인정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학의 영역, 더 구체적으로 설계의 영역에서의 human error는 당연하게 전제되는 요소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실수를 한다. 설계의 단계에서는 이러한 실수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을 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아무리 완벽한 설계 및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실수를 0으로 수렴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계에도 동일하게 해당한다. Command and Control(명령 그리고 제어)은 인간이라는 종을, 아니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무기에 대한 제어가 얼마나 순진하고 환상에 불과한지 아칸소 주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강조한다.   


5/23 <타짜의 와인> Jerry Rothwell, <단편 모음>     

<타짜의 와인>은 정말 재밌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다른 느낌보다 정말 재밌게 봤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영화는 '루디’라는 신비로운 인물에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으로 그를 관객에게 소개하며, 종래에는 그가 와인시장에서 벌인 희대의 사기극을 조명한다. 루디는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지만 영화는 결코 그를 범죄자에 향하는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영화가 와인을 잘 알지 못하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와인의 세계 속 사람들을 만나는 듯이 느껴졌는데 이러한 차분한 시선은 당사자들의 세계와 그들의 언어를 다소 차갑게 바라보게 하고 결론적으로는 이는 와인 세계 내의 ‘웃긴’ 모순들을 부각한다.    

와인은 각 제조장에서 장인정신과 그에 따른 자부심으로 생산된다. 하지만 와인을 소비하는 부자들이 숭배하는 것은 그러한 노동의 산물이 아닌 그 결과물에 붙은 가격표이다.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는 특별한 매력과 특유의 분위기에 끌린 부자들이 점유한 와인의 세계에 루디가 등장한다. 루디는 함부로 발조차 들이밀 수 없는 그 세계를 맛을 느끼고 말을 하는 그의 혀로 사로잡는다. 그리고선 여러 와인을 섞어 완성한 ‘고가의 와인’을 그들에게 판매함으로써 부자들을 바보로 만든다. <Catch me if you can>을 떠올리게 하는 루디의 사기극은 그의 집이자 와인 제조장을 수색당하면서, 그가 만든 공식들이 곳곳에 써진 빈 와인병들이 발견되면서 막을 내린다. <Sour Grape>(영화의 원제)은 그런 루디의 사기극을 폭로하기보다 와인 시장을 이루는 부자 집단의 허영심과 걸맞지 않은 포도를 쳐내는 그들의 배타적인 모습을 부각한다. 루디는 분명 ‘사기 와인’을 통해 가공할 만할 돈을 부자들로부터 뜯어낸 사기꾼이다. 하지만 그가 ‘사기 와인’을 제조하기 위해 적은 수많은 공식들과 맛본 수많은 와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사기극’이 과연 부자들이 만들어낸, 천정부지로 치솟는 와인시장을 만들어낸 와인들을 만드는 제조장의 장인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반문하게 한다.

참석할 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번 환경영화제에서는 <타짜의 와인>의 감독인 제리 로스웰의 전작들도 함께 보이는 특별전을 진행했다고 한다. 시간이 적당치 않아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 못했지만 <Sour Grape>은 그의 영화를 따라다니는 ‘무척 재밌다’는 설명이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여서 그의 전작들도 궁금하게 되었다.      


<타짜의 와인> 뒤 시간의 <성난 서퍼들>도 보고 싶은 영화였지만 영화의 단편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단편 모음 2>를 보게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단편 모음 2>는 총 5개의 단편들(<베네의 수평선>, <날 먹으러 와요>, <녹색의 상처>, <수중도시>, <가장 자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네의 수평선>은 동물 밀렵을 다룬 특이한 질감의 애니메이션이었고, <날 먹으러 와요>는 인류가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 자체의 문제, 그리고 섭식장애를 통한 여성 혐오의 문제를 뮤지컬 비슷한 형태로 다룬 영화였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녹색의 상처>는 일련의 음악과 함께 실제 자연과 자연의 이미지를 그린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여주는 영화였는데 이도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상 깊었던 단편은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출신 감독들의(Luz Ruciello, Lluis Miras Vega)<수중도시>와 한국예술 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세 명의 감독들이 연출한 <가장 자리>였다. <수중도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도시와 그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따라간다. 제대로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짧은 내레이션 이후에 영화는 물에 잠긴 도시와 사람들을 비추는데 그곳은 황폐하고 제대로 삶을 꾸릴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어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자리>의 카메라는 재개발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을 주로 따라간다. 영화엔 철거민들의 인터뷰도 들어가 있고 그들이 쫓겨나는 너무나도 폭력적인 장면들도 담겨있지만 그것으로 즉발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는 차분하게 깔끔한 아파트가 지어지는 공간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삶을 짓밟고, 폭력으로 이룩한 깔끔한 아름다움의 추악함을, 그 안에 내포한 누군가의 울부짖음을 응시하게 만든다. 아파트가 건설되는 현장을 담은 장면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새롭게 지어지게 될 ‘멀끔한 아파트’는 철거민들의 공간을 빼앗고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세워지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저 공간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한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5/24 <종말의 시대> Jared P. Scott

5월 24일은 예비군 훈련을 받은 날이었다. 덥고 이상하고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날의 시작에 나는 사실 영화제를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훈련장이 상당히 멀리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너무 지쳐있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영화제의 마지막 날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씻고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있어서, 그리고 영화제의 폐막식과 같은 시간대에 있는 <종말의 시대>에 묘하게 기대가 되는 부분이 있어서 후회하기 싫은 마음에 영화제로 향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종말의 시대>는 그 묘한 기대에 부합하는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다. 사실 영화제에서 만났던 영화들 중에는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종말의 시대>는 끔찍한 문제들이 내포되어있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21세기의 지구라는 공간을 큰 그림으로서 바라보며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구체적 문제들과 환경문제,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기후 정책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밝혀낸다. 전문가들의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인과관계는 분명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경고하는 부분도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문제들에 대해 영화가 지속적으로 취하는 태도가 너무나 거슬렸다.

영화가,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지극히 제 1 세계,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문제들을 사고한다. 잘 정돈된 공간의 한가운데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인물을 앉혀 진행하는 인터뷰(공간은 달라지지만 지독하게 유지되는 이 인터뷰 구도는 영화 내내 굉장히 거슬리는 부분이었는데 너무나도 잘 정돈된 공간에 멀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끔찍한 일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이 정돈된 공간도 저렇게 될 수 있습니다’라고 걱정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는 세계의 문제들을 바라보며 결국 그 자체의 문제보다 결국엔 그것이 야기시킬 수 있는 자기 공간에 대한 위협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영화의 요지는 세계의 문제들이 결코 환경문제와 무관하지 않으며 근본에는 환경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겠지만 서구의 1 세계 사람들이 세계 곳곳의 문제를 ‘관찰’함으로써 자신들의 세상의 안보 걱정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기분 좋게 보긴 힘들었다.      

<종말의 시대>를 끝으로 6일에 걸친 서울 환경영화제 참석은 끝이 났다. 매일매일 고민을 담은 새로운 영화들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고 놀랍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리고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낸 현재의 환경은 결국 인류를 규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환경을 고민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그런 고민들을 영화로서 나눔을 받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좋은 경험이었으며 내년 환경영화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환경 영화제의 각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Girl's on top>이라는 짧은 단편이 환경영화제 홍보영상처럼 되풀이되었는데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 보니 정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지금도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테마음악이 인상적이었고 천우희 씨가 클로즈업되어 우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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