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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석 Aug 04. 2019

먹고살기 위한 노동

<길모퉁이가게> 이숙경, 2018 

‘소풍가는 고양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에게 일터이자 직업학교로 기능하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길모퉁이가게>는 제목처럼 길모퉁이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도시락 배달 업체 ‘소풍가는 고양이’의 모습과 그 구성원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담는다. 그 7년 남짓한 시간에서 ‘소풍가는 고양이’는 위기와 변화를 겪으며 이사를 가고, 구성원을 늘리고, 매출을 올린다.       


‘소풍가는 고양이’는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한 사회적 실험처럼 차곡차곡 변화를 거쳐 자본주의 시장에 자리 잡는다. 여유가 넘치고 회의시간 조차 나른하던(기본적으로 일이 적기 때문에) 가게의 공간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을 기점으로 빨라지고, 정교해지고, 다급해진다. 영화는 ‘소풍가는 고양이’의 이런 변화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를 하는 대신 가게라는 공간과 그 구성원들의 분위기의 변화를 잡아내는데 집중한다.     

대안적인 선택을 한 존재들을 위한 대안의 공간. 이 곳이 익숙한 모습으로 자본주의 시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 이 결론을 향해 안타까움이나 비판을 표하기는 쉽다. 하지만 <길모퉁이가게>가 그리는 ‘소풍가는 고양이’의 일련의 선택들은 시장에서의 더 큰 파이를 차지하겠다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아닌 대안적인 공간의 생존을 위해 역설적이지만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했었던 조치들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평가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매출이 많이 올라간 시점의 가게. 위생복을 차려입고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분주히 반찬을 채워 넣는, 빨리 이뤄지지 않는 작업에 대해서 다그침이 오가는 주방의 모습에서 공장 속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주의 사회가 ‘소풍가는 고양이’의 노동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하기 위해서 ‘소풍가는 고양이’의 노동은 공장화 되고, 말이 없어진다. 살아남기 위해서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효율적인 노동과 노동자를 따지게 된다.       

‘가치 있는 노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윤이 남아야 하는 사업, 이윤이 충분히 남아야 생존이 가능한 사회에서 각 노동에 부여되는 가치의 기준은 애매하고, 자본이 자본을 낳는 것이 가능해진 금융 자본주의 아래에서 가치 있는 노동이란 개념은 너무나 불분명하다. 그런 상황 아래 ‘소풍가는 고양이’에게 이루어지는 변화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점은 가장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자기 보존을 위해, 생존을 위해 다그침을 하고 다그침을 당해야 하는 노동의 현장은, 이것이 필연적인, 소위 말하는 어쩔 수 없는 상태라면 생존하기를 포기한 상태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영화는 ‘소풍가는 고양이’가 최초로 제안되는, 사회적 기업의 투자가 결정되는 자리를 보여준다. 자리마다 다과가 놓인, 분명 선의가 넘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을 이 공간과,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대안적인 곳의 존폐를 결정하는 이 공간의 속성의 차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의 모순과 더불어 섬뜩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풍가는 고양이’가 속해있는 구성원들에게 소중한 공간인 것은 분명하고 대안이 되는 공간인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대안이 되는 공간이 용인하는 것들을 마주할 때,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막막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고 싶었던 문신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쫑(나종우)분의 설레고 기분 좋은 모습이 자꾸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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