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지 못한 게 너무 많아, 뜨거워지는 걸 사랑이라 여기지 못하고-
그날 부산역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지, 바람은 낮게 불고, 지붕들은 끊임없이 안개를 게워내고 있었어, 전광판들은 일회용 라이터처럼 반짝반짝 영혼의 불을 켜대고, 의자들은 목을 한껏 늘이고 있었다, 혜성약국, 은하커피숍, 발이 긴 에스컬레이터 걷고 또 걸어,
전광판 반짝이는 붉은 글씨 사이로 한 천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천사의 날개는 희고도 검었으며, 천사의 눈까풀은 검고도 붉었으며, 천사의 심장은 붉고도 붉었다, 천사의 붉은 심장에 도착의 입구가 가파르게 매달렸다,
사랑하는 네가 걸어 나오는 저 도착의 출구
사랑하는 네가 걸어 나오는 저 출발의 입구
도착은 아름다워
도착의 출발은 아름다워
나는 나아간다, 사랑하는 너를 찾아 출발의 입구로 나아간다, 레일을 꼬옥 붙들고, 인생은 기차 바퀴 위에서 가끔 길게 퍼져, 인생의 이불은 무지개 숨빛 혹은 5월 모란빛으로 너울거리고, 소망우체통엔 지상에서 가장 긴 편지 달랑거리고,
(주)실천문학
실천시선 217
강은교 시집 『바리연가집』
37쪽-38쪽
나는 그래
'안개를 게워내고 있었'다는 말에 홀렸다.
그리고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열기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신기하게도 목이 아닌 눈이 뜨거워졌다.
붉고도 붉은 것을 이미지화한다면, 뜨거운 심장이 분명 제일 먼저 떠오를 거다.
생각해 보니 마음이고, 더 표면화해 보니 사랑이니까.
그러고 보니, 당신은 내게 무얼 사랑하는지 묻기 위해 아름답다고 말한 걸까.
사랑은 어디에 붙여도 아름답고,
아름다움은 어디에 붙여도 사랑스러우니.
고민이 없진 않다.
수수께끼란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은 기분이니까.
도착의 출구와 출발의 입구를 자각할 수 있는 나이가 있을까.
두 곳이, 한 곳이자 다른 두 곳이라 생각하며 지나치는 한 순간이 존재할까.
나는 그걸 눈치챌 수 있을까. 나는 그때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입에 든 사탕처럼 손아귀에 딱 잡아챈다면,
왠지 온몸이 뜨겁다가 결국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꿈에 그리던 순간일까, 앞에서 먼저 달리고 있는 꿈이 남긴 채취일까.
뭐든 희망도 아름답고, 소망도 사랑스러우니 편지를 쓸 순 있을 거다.
인생길은 너무나 길고, 나는 달리는 중이다.
달리는 걸 멈추기 싫은 마음을 사랑하고 있다.
'나는 나아간다'는 줄 하나에 달린 러너랄까.
은포역에 가면 나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다.
나와 같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 그런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응원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자발적인 의식들이 뿜어내며 도착의 입구를 만든 천사들.
생각해 보니, 가늠해 보니,
나는 삼키지 못한 게 너무 많아, 뜨거워지는 걸 사랑이라 여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게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