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덕분에 자라고 또 자란다
오랜만
브런치에 오랜만이다. 2e 관련 글을 자주 쓰고 싶었는데 조금 늦어진 이유를 말하자면 그 사이 우리는 아이를 위해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는 99.7% 백인 비율이던 곳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다양한 다인종과 문화가 존재하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곧 이사를 온 지 1년이 되어가는데 아주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예전 살고 있는 동네는 영재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이가 두 살 위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영재프로그램이 있어서 아이는 또래들과 생활하고 있다. 물론, 영재 프로그램을 쉬워하고 재미없어 하지만 주변에 끝내주는 도서관 시스템 덕분에 아이는 아주 잘 자라고 있고 난 현재 미국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 보조교사일을 하고 있다.
네가 큰 아이라 다행
신경다양성 아이가 큰 아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말 키우기 힘들고 어려운 아이를 만난 덕분에 난 성장할 수 있었고 여전히 자라는 중이다. 큰 아이가 신경전형적인 아이고 둘째가 신경다양성 아이였다면 나는 과연 그 아이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었을까?
동생이 있어 다행
큰 아이는 신경전형성 동생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동생이 없었다면 본인은 단순히 영재인데 문제아로 살아갔을 것이고 여전히 마스킹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난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거나 때리지 않는 양육을 했는데 신경전형성 둘째는 그로 인해 정말 이 세상에 없을 스위트함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다. 내가 힘들다고 오로지 한 아이만 낳고 키웠다면 어쩌면 난 아이를 이해 못 했을 것이며 아이 역시 본인이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신경전형인이 대부분인 학교에서 심한 마스킹을 했을 것이다.
진단을 받고 난 후 아이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거였어!"
어쩌다 특수교육
이사를 오기 전 현재 교육청과 미술 선생님 관련 인터뷰를 봤었다. 하지만 미술선생님 자리가 안 나왔던 터라 근처 초등학교에서 학교 소속 대체 교사를 했다. 대체 교사를 하는 중에 특수교육 대체 업무를 정말 많이 보게 되었다. 특수교육 보조교사 공석이 생긴다고 교감이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렇게 난 어쩌다 보니 특수교육팀 일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를 키운 아이, 나를 키우는 아이들
엄마가 되기 전 미국 초등학교에서 2년 정도 미술 교육일을 했었다. 그때 난 어렸고 무지했다. 엄마가 된 후 11년을 온전히 엄마로 살았다. 키우는 게 쉽지 않은 큰 아이 덕분에 많이 울고 많이 성장한 어른이 되었다. 11년간 마음이 건강해지고 세상에 대해 좀 더 넓은 시선을 배우게 된 나는 내 아이들과 같이 자랄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미국 공교육으로 돌아갔다. 그 돌아간 미국 현장에서 나는 학교 아이들을 통해 더욱 더 좋은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