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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의 미래

[20.12.23.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두렵지만 매력적인 VR기술
장애 등 체험 통해 공감 확대
재난 대비 교육… 공포 극복도
일상·가상세계 혼란 땐 위험


몇해 전 ‘포켓몬고’라는 증강현실(AR) 게임이 전국적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포켓몬이 갑자기 등장해 사용자를 약올리며 사라지거나 숲속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하는 등 독특한 재미를 주는 전형적인 위치기반 실외탐색형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포켓몬이 나타나는 배경이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 비친 실제공간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 포켓몬고의 매출이 올해 상반기에도 상당히 높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타인과의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우울한 감정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AR 게임을 찾는 트렌드가 형성된 것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관련 분야의 기술도 점점 더 개발되어 2015년 120여건에 불과했던 AR 관련 특허 출원이 2019년 330여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상현실(VR), AR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스탠퍼드대 제러미 베일렌슨 교수는 ‘두렵지만 매력적인’(Experience on Demand)이라는 책에서 VR가 적용될 수 있는 여러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공감’의 확대다. VR를 통해 노인, 장애인, 소수인종, 심지어 반려동물의 입장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공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생활 체험시설들이 사람이 나이가 들었을 때 거동에 얼마나 힘이 들고 시력은 얼마나 약해지는지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베일렌슨 교수의 책에서는 시리아, 우크라이나, 수단 출신의 난민어린이 세 명이 난민캠프에서 어떠한 삶을 사는지 VR로 체험할 수 있게 한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사례를 통해 공감이 향상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는 교육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머리를 감싸고 단단한 구조물이나 테이블 밑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것을 TV로 보는 것은 쉽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렵다. 실제 지진이 일어날 때처럼 눈앞의 바닥과 천장이 흔들리고 큰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 책상 밑으로 즉시 몸을 들이밀어 보는 경험이 VR 기술을 통해서는 가능하며, 이렇게 연습해 두면 지진 발생 시 대응은 훨씬 나아진다. 미식축구, 무용 등을 배울 때에도 VR를 활용하면 평소 잘되지 않던 동작이나 팀플레이의 고질적 약점이 개선된다고 한다.



세 번째는 세계관의 변화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지구가 얼마나 작은 행성인지 새삼 깨달으면서, 이 취약해 보이는 천체 안에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다는 기적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VR를 통해 전기톱으로 나무를 쓰러뜨리는 경험을 한 사람은 1년에 화장지 24롤 이상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인들의 평균치보다 더 적은 양의 휴지를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원인불명의 통증을 치료하거나 강력한 공포를 체험한 후 그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 불필요한 오프라인 만남을 줄이면서 교통과 환경의 비용을 낮추는 것 등이 VR의 장점이라고 베일렌슨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VR 기술에도 어두운 면은 있다. 첫째는 많은 이들이 호소하는 어지러움 또는 ‘시뮬레이터 멀미’다. 초당 프레임 수가 실제보다 적은 VR 영상물을 보면서 두 눈을 오랜시간 집중하는 것은 인지적으로 상당히 부자연스런 상황을 조성한다. 게다가 VR 기기를 오래 착용하고 있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올 경우 일상이 마치 하나의 가상세계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VR 기술을 이용한 폭력이나 현실도피에 탐닉하게 되면 범죄나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질 확률도 있다.



앞으로 VR와 같은 기술의 장점을 잘 활용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재해, 환경, 기후변화, 국제분쟁 등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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