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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회

[20.7.29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유튜브 등 포털에 빠진 사람들
추천알고리즘에 편향적 노출
특정시각에 경도된 정보 몰입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절실해


바야흐로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포털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카페에서, 심지어 일터에서도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을 켜두고 하루 종일 눈을 떼지 못한다. 흔히 스마트폰 중독이나 스마트폰 과의존이라 불리는 현상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앱이나 게임,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등 특정 앱 몇 개에 빠져있는 경우가 다수다.


그런데 유튜브나 소셜앱들이 이런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는 무엇일까? 바로 강력한 추천 알고리즘에 있다. 당신이 특정한 동영상을 선택한 순간 당신의 접속위치, 기존 영상 소비기록, 연령대와 성별 등 다양한 정보가 함께 결합하면서 당신과 비슷한 취향이나 인구 사회학적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보는 동영상을 바로 추천해주기도 한다. 게다가 당신이 보고 있는 동영상의 후속편이나 비슷한 내용 분류에서 훨씬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까지 추천해주는 통에 동영상을 한 편만 보고 앱을 닫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한 편 두 편 동영상을 보다가 재미가 없다 싶으면 고속재생 버튼을 눌러 빨리 마치고 다음 동영상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동영상 중간에 등장하는 광고가 거슬린다 싶으면 큰 맘 먹고 추가 결제를 통해 광고를 제거하기도 한다. 이때가 업체 입장에서는 광고수입 외 추가 수익 창출의 모멘트가 된다.


추천 알고리즘은 인지된 즐거움(perceived enjoyment)을 높여 이용자의 충성도를 올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 창출의 핵심이지만, 이것이 사회경제적 이슈에 관한 콘텐츠일 경우에는 예기치 않은 역효과를 불러온다. 바로 관점의 극단화와 선전선동과 같은 일면적(one-sided) 메시지 과노출로 인한 세계관의 왜곡이 그러하다.


흔히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라고 불리는 현상은, 특정한 시각에 경도된 정보에 많은 사람들이 공유와 ‘좋아요’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이러한 노출이 온라인 사회연결망을 타고 급속히 확산하면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의 중요한 기술적 배경이 바로 추천 알고리즘인 것이다.


일부 정치시사 관련 채널들은 사실이 전혀 아니거나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가짜뉴스로 조회 수를 올려 광고 수익을 잔뜩 취하고서는, 이용자 신고로 제재를 받으면 잠시 영상을 닫았다가 제재가 풀리면 제목이나 내용을 살짝 바꿔 다시 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용자들의 신고로 닫혔던 콘텐츠조차도 이미 다른 이용자나 소셜미디어에 올려져 대대적으로 확산된 뒤에서야 조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루머와 가짜뉴스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열어주는 발화의 기회를 특정 정치성향 이용자들의 기대심리를 충족하는 왜곡된 정보 유포에 적극 활용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런 왜곡된 정보를 시청한 뒤에 추천알고리즘이 선정한, 유사하거나 더 심하게 왜곡된 내용을 계속해서 시청하면서 근거 없는 정보를 점점 더 사실처럼 믿게 되고 결국은 최소한의 인지적 균형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곡된 정보의 피해자들을 정부나 법이 나서서 신속히 구제하는 것으로 족할까? 사실 왜곡된 정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도 인력과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명백히 거짓인 정보에 대한 신속한 대응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이다. 이제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소셜미디어든 대중매체든 미디어가 보여주는 현실은 하나의 버전에 불과하고,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균형 있게 소비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모든 지식의 잠정성과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과학적 사고와 일맥상통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과 연습이다. 사실 추구에의 집요한 여정. 이것을 가르치고 경험하는 곳이 학교와 가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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