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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業의 본질

[20.6.24. 세계일보 사이언스프리즘/내 글]

애플, 플랫폼서 ‘O2O기업’ 변신

아마존, 클라우드서 수익 창출

업의 본질 파악해야 미래 선도

대학도 변화된 역할 고민해야


애플이 자신의 앱스토어상에 올려진 앱들을 거쳐 이뤄진 상거래의 규모를 공개했다. 무려 5190억달러(약 6268482억원)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2020년 예산 502조원보다 큰 규모다. 이건 정말 놀라운 수치다. 애플이 아이패드나 맥북을 파는 하드웨어 회사이자 온라인 소프트웨어(앱)를 유통하면서 거기서 상당한 규모의 수수료를 떼는 중개업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앱을 통한 거래의 약 80%인 4130억달러가 모바일상거래 관련앱에서 나왔는데, 그중 3분의 2가 소매관련(리테일)이었으며, 여행, 승차공유, 음식배달, 식품 등이 주된 상품이었다. 애플은 전혀 의도치 않게 여행업, 승차공유업, 음식배달업, 식품유통업의 뒷마당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이렇게 보니 애플은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의 탈을 쓴 O2O(온라인투오프라인) 기업이다. 결국 그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거래를 내려다보며,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거미줄 같은 연결망에 빨대를 꽂고 있는 ‘돈의 블랙홀’이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플랫폼 사업의 위력이다.


서울대 유기윤 교수는 그의 ‘2050 미래사회보고서’라는 책에서 앞으로 극소수의 ‘플랫폼 소유주’와 그러한 플랫폼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플랫폼 스타’가 대부분의 부를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요즘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몰고 다니는 유튜버들이 ‘플랫폼 스타’의 좋은 예다. 유 교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레카리아트’에 속하고 그들은 더 작아진 빵조각을 더 잘게 쪼개 나눠먹으며 국가의 복지에 의존하거나 인공지능(그의 표현에 의하면 ‘인공지성’)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종류의 암울한 전망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실제로는 사회 전체의 파이가 커졌을 때 사람들의 절대적 삶의 질도 함께 향상되어 왔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그리고 정부도 기본소득 등 새로운 정책대안을 통해 불평등의 완화에 힘을 쓰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의 위력이 우리 일상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업의 본질은 그 업을 시작할 때 정립되기도 하지만, 주변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차츰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때로는 주업(主業)이 아닌 부분이 확 커버리는 경우도 있다. 맥도날드 역시 ‘해피밀’이라는 아이들용 세트메뉴에 장난감을 포함시키다 보니 세계 장난감 시장의 큰손이 되어버렸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구글 역시 이메일과 검색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이라기보다는 수익구조상 온라인 광고중개업에 가깝다. 아마존 수익의 큰 부분은 상품판매가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나온다. 이렇듯 업종의 본질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보험업은 사람을 모으는 업종이고, 증권업은 상담업이며, 시계는 패션산업, 백화점은 부동산업, 호텔은 장치산업, 가전은 조립 양산업, 반도체는 시간산업이라고 했던 대기업 회장의 언급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업의 본질을 일찍 파악하는 회사가 결국은 선도기업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갖는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고백건대, 필자 역시 아직도 고민하고 있을 뿐 답을 찾지는 못했다. 수명이 늘면서 ‘인생3모작’이라는 말처럼 여러 가지 직업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여 다양한 학위과정과 비학위과정을 통해 지식수요를 충족해주는 평생교육기관으로 대학을 정의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능은 이미 대학담장 바깥의 민간 교육기관들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대학을 박사학위자를 수천명씩 보유한 연구중심 조직으로 정의할 경우 교육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누락하게 된다. 대학의 또 다른 역할로 산학협력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도 있겠다. 이 부분은 대학의 원천기술이 기업을 만나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기업 임직원이 첨단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도록 대학이 재교육시켜주는 역할도 포함된다. 결국 대학은 교육, 연구, 산학협력의 혁신적 ‘플랫폼’이자 상시 접속가능한 ‘클라우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오늘도 대학은 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고민은 깊고,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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