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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와 위험회피행동의 심리학

[20.4.16. 사이언스프리즘 세계일보/내 글]

‘사회적 압력’으로 마스크 착용

동양문화권서 ‘집단주의’ 강해

다수의 의사에 따라야 ‘편안함’

‘최소한의 장비’ 쓰는 게 합리적


주로 데이터를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왜 어떤 사람들은 손을 잘 씻고,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걸까 궁금해졌다.



영국의 두 학자가 2010년 영국 보건심리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을 읽어보았다. 이 논문은 전염병이 돌 때 감염회피 행동에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지에 관해 기존 연구 20여 편을 정리했다. 먼저 마스크를 쓰는 행동은 사회적 압력을 많이 느낄 때 늘어난다고 한다. 또한 남성보다는 여성이, 미혼자보다는 기혼자가 마스크를 쓸 확률이 높다. 연령이 낮을수록 마스크를 쓸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들어맞는지는 의문이다.


심리적으로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낄 때, 마스크를 쓰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느낄 때, 내가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느낄 때 마스크를 쓰게 된다고 한다. 어찌보면 참으로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필자가 미국에서 살 때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먼지가 많이 나는 곳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독감 철이라고 해도 마스크를 쓰는 경우는 참 드물었다. 당시에 누군가가 마스크를 쓰고 내 수업에 들어왔다면, 아마도 꽤 심한 독감에 걸려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끼고 왔을 거라고 추론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문화 탓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안면을 가리고 있다면 총기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나 범죄자일 확률이 높다는 선입견. 서양 영화나 TV드라마에도 종종 등장하는 얼굴 가린 악당의 이미지가 마스크와 오버랩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에서는 다르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정류장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온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집에 다녀왔다. 다수가 특정 행동을 할 때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사회적 압력은 확실히 동양문화권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호프스테드라는 문화 간 차이를 연구하는 학자는 이런 특징을 집단주의라고 불렀다. 집단주의는 다수의 의사에 따라야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남의 눈치를 보고 살면 큰 탈이 없다는 경험칙과 문화규범. 이런 것이 버스를 기다리며 줄 선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끼고 있는 밑바탕인지도 모른다.



문화 간 차이야 어떻든 입에서 튀어 나가는 침방울이나 다른 사람의 입에서 튀어 들어오는 침방울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가 마스크라면 쓰는 게 합리적이다. 흔히 서양은 합리적이고 동양은 감정적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일반화는 요즘의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꼭 들어맞지는 않는 것같다.



위에서 소개한 논문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정리되어 있었다.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가 감염률을 낮춘다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거리를 잘 지켰다. 또한 병에 걸렸을 때의 비용이나 질병의 심각성에 예민한 사람들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한다. 연령이 높은 사람들과 정부기관 등 권위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사람들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따른다.



사람 간의 거리두기 행동을 연구하는 공간학(proxemics)이라는 학문이 있다. 근접학이라고도 하는데, 이 학문에 따르면 사람이 무심코 타인과 유지하는 거리를 보면 심리적 친밀도나 거리감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친하다고 느끼지 않는 상대가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멀리서서 나를 대하면,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가족과 친구는 1.2미터 이내, 손을 잡고 포옹할 수 있는 연인과의 거리는 0.5미터 이내에서 인간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현재 정부가 권하는 1.5∼2미터의 거리는 아는 사람과 대화하기에 적당한 거리다. 이제 우리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우리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전 인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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