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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08. 2024

직면과 화해의 감각, 미오기傳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김미옥 작가가 동시에 두 권의 책을 세상에 선 보인 후, 무수한 서평과 찬사가 쏟아졌다. '미오기傳'은 활자 곰국을 끓이는 작가 본인의 고백적 서사를 담은 일대기요,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서평집이다. 이 중 '감으로 읽고...'는 출간 전 북펀딩을 진행하였는데 망설임 없이 참여했다. '이 책은 많이 읽혀야 해'라는 생각이 들어 열 권을 신청했다가 바로 두 권으로 정정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내가 홍보하지 않아도 잘 될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겹쳤다. 결국 '비공개 두 권'이라는 소극적 참여로 작가의 입봉과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동시에 '미오기傳'이 세상에 나왔다.

'미오기傳'은 입원을 앞두고 단숨에 읽었고, '감으로 읽고...'는 아직도 읽는 중이다. 읽고 쓰는 감각을 서평이라는 형식으로 녹여낸 '감으로 읽고...'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평 이상이다. 평론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독후감이라는 형태로 글을 남기지만 단순한 읽은 느낌이나 작가에 대한 인물평 정도에 그친다. 조금 단순한지, 아니면 전공 지식을 살려 훨씬 디테일하게 묘사를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감으로 읽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서평 구조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모든 꼭지에 작가의 교양이 녹아들었다. 한 편 한 편의 서평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되, 물 흐르듯 순환한다. 연신 '같은 책을 이런 시각으로 읽을 수 있구나'라면서 감탄하였다. 이런 시각이라 함은 더 풍부하고 깊은 경지를 말한다. 누구나 멋진 서평을 쓰고 싶지만 단순하게 읽고 쓰는 것만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독서와 경험이 쌓아 올린 '김미옥표 서평'으로 읽고 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마디로 
기성작가와 지망생들을 동시에 긴장하게 하여 부단한 공부의 자극을 주는 책이다. 더 자세하게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하기엔 내 언어는 부박하고 짧다.          


'미오기傳'에서 처음 내 눈길을 묶어둔 문장은 프롤로그에 있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는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이 책 전반을 통과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나이 또래의 성인들에겐 누구나 힘든 어린 시절이 있다. 그것은 가난일 수도, 꿈의 좌절일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한 가족 간 갈등이나 해체까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어린 시절을 소환하여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으로 소비할 때, 작가는 힘들 때마다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직면과 화해, 그리고 승화


심리학에서 말하는 승화(sublimation)의 현실 버전을 보는 듯하다. 작가 자신의 욕동을 사회적 가치로 옮겨 부정적으로 얽매일 필요가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단순한 용서나 포장으로 과거와의 화해를 이룰 수 없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과거와의 직면을 회피하지 않았다. 직면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아픈 과정이다. 그것은 작가의 인생 경험이 만들어낸 풍부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힘겨운 고통과 시간의 경과를 감내했을 것이다. 

언젠가 '열다섯, 나는 도시에 버려졌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왜 이런 쓰레기 같은 문장을 썼을까를 생각했다. 과거를 직면할 수 없었고 직면할 수 없으니 화해는 꿈도 꿀 수 없는 미성숙한 어른의 자기 연민,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그때 혼자서 삶을 책임지지 않았다면', '가족이 해체되지 않았다면'이라는 불가능한 가정을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작가들이 프롤로그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는데 단언컨대 미오기전의 프롤로그는 짧고 강렬하다. 처음부터 독자들을 압도적으로 흡인한다. 동시에 책의 본문에 당도하기도 전에 독자들을 위로한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운은 어쩔 수 없어도 성격은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나쁜 기억은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미오기전, 5쪽, 프롤로그)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위로


이 책의 많은 서평에서 '단숨에 읽었다'라고 한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 특유의 유머와 낙관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때로 반성도 하게 하면서 동시에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뉘라서 이렇듯 당당하게 아직 생존해 있을 가족사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화해를 이끌어 훌륭한 문장으로 다듬어낼 수 있을까. 그것이 작가의 미덕이자 특이점이다.

종이책의 수난 시대에 문해력 떨어지는 독자 탓 하지 말고 "작가들이여 더 갈고닦아라, 그리고 독자들을 만나라"라고 선언한다. 김미옥 작가의 고백적 서사 '미오기傳'은 바로 이 점을 독자에게, 기성작가에게 분명하게 전한다. 말하자면 나 같은 얼치기 작가에게도 '어떻게 써야 할까'를 충분히 고민하게 한 책이었음을 고백하게 한다. 


몇 번의 입퇴원을 반복한 후 읽고 쓰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지금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은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읽을 여유가 생긴 것 같지만 활자를 보면 쉽게 피로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이 생겼다.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의무감을 생기게 한다는 것, 이 또한 김미옥 작가의 힘이다. 이 글을 쓰면서 책의 본문 내용은 최대한 인용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겼다면 책은 구입해서 볼 일이다. 에필로그 격인 '소멸의 아름다움' 편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생생한 경험을 반영한 명문장이다.

세상을 사는 것은 연필처럼 제 몸을 깎아내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씩 줄어드는 몸피를 보면서 나를 스쳐간 시간을 절감했다. 이제 볼펜 몸통에 의지하던 몸당연필처럼 내 삶도 소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연필로 편지를 쓰고 싶다.(미오기, 278쪽, 소멸의 아름다움)
 
      

소멸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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