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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12. 2024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르네상스인을 꿈꾸는 공학도를 위한 필수교양서 

언젠가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다전공자이다. 특성화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했고 대학에서는 기계교육공학과에 다니면서 부전공으로 수학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대학원 공부를 했는데,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전산교육을 전공했고, 일반대학원에서 교육과정을 공부하였다. 교사 자격으로는 중등 2급 정교사(기계), 중등 1급 정교사(수학), 중등 2급 정교사(전산) 자격이 있고, 고등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칠 수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교육학,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교육과정, 학습지도, 교직실무, 교육정책 등의 과목을 강의했다. 

다른 자격증도 몇 개 있는데 고등학교 때 취득한 정밀가공기능사 2급, 인터넷 도입 초기에 딴 인터넷 정보검색사 1급,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이 있다. 전공을 바꾸어 공부한다고 할때 주변에서는 한 가지를 꾸준히 깊게 들고 파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지금은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리지만 그때만 해도 모험이었다.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진중하게 끝을 보지 못하고 넓고 얕은 지식을 탐하였다. 두루 아는 척은 할 수 있지만 깊게 들어가면 어느 하나도 자신이 없다.       


올봄에 장가를 간 아들의 방이 비어 있다. 가끔 들어가 책도 읽고 아들의 흔적도 느껴보곤 하는데, 어느 날인가 눈에 띈 노란 책이 있었다. 제목을 보니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이라 돼 있다. 공학도를 위한 인문학 교양서다. 호기심에 처음 몇 쪽을 훑어보다가 어느새 중반부까지 읽게 되었다. 아들은 공대를 나와 전공 관련 분야 회사에 다니고 있다. 몇일 전 아들이 본가에 왔을 때 '우리 가족 중에는 나만 엔지니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아빠 역시 공학과는 거리가 멀지 않냐는 생각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나중에 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새뮤얼 플러먼 지음, 김명남 옮김, 도서출판 유유, 2014


이 책을 쓴 새뮤얼 플러먼(Samuel C. Florman)은 대학에서는 공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영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본인의 공부 경험을 살려 엔지니어링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글을 다수 썼다. 그는 엔지니어링의 사회적, 윤리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를 다룬 여러 책을 출판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교양 있는 엔지니어', '공학의 실존적 즐거움' 등이 꼽힌다. 모두 엔지니어링의 본질과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즐거움을 탐구한 작품인데, 그의 공부 배경을 보아 가능한 저작으로 생각된다. 


이 책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은 엔지니어링이 단순히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창의성과 윤리적 책임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활동임을 강조한다. 플러먼은 엔지니어링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철학적, 윤리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엔지니어링의 역사적 배경, 현대 사회에서의 역할,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을 다루며, 기술과 인문학의 조화로운 공존을 주장한다. 


플러먼이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엔지니어링이 단순한 기술적 작업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고귀한 활동이라는 점이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일을 통해 느끼는 성취감과 존재의 의미를 강조하며, 엔지니어링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엔지니어링이 가진 윤리적 책임과 도전 과제들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1)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2) 공학과 인문학 두 문화 사이에 자연스럽게 흥미와 관심의 다리를 놓는 것, 3) 인문학의 속성과 내용을 폭넓고 간략하게 훑어봄으로써 평범한 엔지니어가 기억을 금세 '되살리도록' 돕는 것, 4) 엔지니어가 인문학의 세계를 더 깊이 여행하도록 이끌고 그때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을 추천하는 것이다. 특별히 세 번째 목적이 솔직하다 여겨지는데, 대중들이 공학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선입견, 예컨대 논리실증적, 이성적, 통계와 데이터 위주 사고 등을 극복하고 빠른 시간 안에 교양을 쌓도록 하자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책은 공학도의 입장에서 역사, 문학, 철학, 미술, 음악의 핵심적 교양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 책을 보면 각 분야의 진액을 발췌하여 늘어놓았기에 인류의 문화유산을 너무 단순화하여 그 과정에서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만하다. 또 책은 원전을 읽어야 제맛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이 책은 여러 인문학 분야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제공하는 다이제스트에 불과하다고 낮추어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독서에 강제는 없다. 독서는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방식에 가장 부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여기, 필요가 닿았다면 읽으면 그뿐이다. 나는 저자가 어떤 생각과 흐름으로 공학도들에게 교양을 선사하고 싶어 하는지가 궁금하여 읽어보았을 뿐이다. 짧은 시간에 문사철의 세계를 일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책이 무용한 것은 아닌 것이 플러먼이 말하는 공학의 철학적, 윤리적 측면을 비교적 적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책에 스며 있다. 아울러 복잡한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례와 현대의 예시를 통해 공학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편 기술과 인문학의 접점을 탐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공학의 폭넓은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 책을 읽은 공학도가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은데, 비전문가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기술적 용어와 개념이 등장하고, 워낙 짧은 지면에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특정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분석이 당연하게도 부족하다. 특히 현대 기술의 급격한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공학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나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종종, 우리의 대화 속에서 문과형이니 이과형이니 하면서 분류를 일삼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보아 문과형 인간은 언어적, 감정적, 예술적 속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과형은 논리적, 이성적, 인과관계 중시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인데 부분적으로 그런 점이 없지 않지만 일반화할 순 없다. 내 경험이 그래서 그런지, 양편의 속성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MBTI 등의 성격 유형 분류하는 것도 그렇고 이분법적 분류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속성이 조금 강하다고 해도 종이 한 장 차이랄까.

보통 독서 후기나 서평은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권하는 목적으로 쓰는데, 글을 쓰고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보니 이 책은 절판 상태이다. 쓰고 보니 헛짓했나 하는 생각에 아쉽다.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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