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내 교단 생활에서 하나의 '매듭'이었던 시간이다. 아래 기사에서 언급한 '이곳에 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는 학급 다짐말(급훈)이다. 매년 담임을 맡으면 급훈 공모에 끼어 넣어 학생들의 선택을 받았다. 나중에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each one must shine, 2019)'를 옮기고 고쳐 쓰게 한 강렬한 동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수요자 중심 구호로써가 아닌 '학생중심'은 80년대 중반 하임 기너트를 만난 때부터 내 교직생활의 모토이자 방편이었다. 수업이든 학급운영이든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풍요롭게 성장하는데 촉진자가 되고 싶었다. 평생 신조가 된 자유의지와 창조적 주체, 그리고 전인적 발달에 대한 지향은 정년을 맞은 지금도 삶의 수단이요 목적이다.
졸저 '교육사유(2014)'가 교직사회에 자극을 주었던 그때 기자가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교육청에 파견을 나가 혁신미래교육추진단 활동을 막 끝내고 백서를 작성하던 때였다. 나는 열정에 들떠 많은 말을 했다. 기자는 더하고 덜함 없이 내가 말한 그대로 기사로 썼다. 지금 다시 보니 너무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글 읽는 분들은 이게 무슨 기분인지 알 것이다. 연구실을 얻어 공부했던 10여 년 간 지적으로 큰 성장을 했다고 여긴다. 여기서 함께 공부했던 많은 이들이 더 성숙한 교사로, 전문직으로, 교장으로, 교원단체 집행부로 진출하여 자기 몫을 했다.
연구실을 처분하고 공유 오피스로 옮겨 학습을 계속했던 이들은 내가 교육부로 끌려가기 전까지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 공부를 이끌기 위해 나는 두 배 이상 더 시간을 투자했다. 그 결과물이 2021년에 나온 '교사, 책을 들다'이다. 함께 공부한 분들의 빛나는 추천의 말이 책 뒤표지에 있다. 대학 때는 날라리였지만 교사로 발령받았을 땐 대오각성하여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경험 자체로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이었던 셈이다.
지금 내게 연구실 따위는 없지만 공부는 그때보다 빡시게 한다. 수술 후 4개월이 지난 때부터 나의 공부 시작 시간은 이른 아침 4시 반에서 5시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에 일어나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어디에 어떻게 써먹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앎과 이해의 갈증에 자양분을 공급할 뿐.
시계가 흐리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집권세력은 무능하고, 수권을 자처하는 세력은 콘텐츠가 빈약해 보인다. 무능과 빈약함이 지속적으로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이 표를 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는 오랜 일이다. 그러면서 너도나도 미래를 말하는 것은 낯 뜨겁다.
'교사, 학습공동체에서 미래교육을 상상하다(2023)'를 썼던 기간 내내 이 문제의식이 떠나지 않았다. 철학 부재의 정치적 작용은 교육정책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교육과 수업의 질을 떨어 뜨린다. 입만 열면 미래, 미래... 알맹이 없는 구호가 난무하는 때에 교육과 사회, 교육과 정치,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고차 방정식의 풀이가 곧 시대정신이요, 공부하는 모든 이들의 절박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