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있을 때나 전문직 생활을 할 때나 비슷한 이유로 놀랄 때가 있다. 교장부터 교육감, 장관에서 총리까지 한 분야의 리더인 사람을 꽤 상대해 보았다.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입장은 물론이요, 나 자신이 리더의 위치에 있었던 적도 많았지만 어디에나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그 비슷한 풍경에 대해서는 언젠가 발설할 기회가 있을 터. 오늘은 그냥 짧고 시시한 이야기 한 토막.
그 기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회의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발휘하는 분이 있다. 옆에서 듣다 보면 '와... 이 순간에 어떻게 저런 말이 생각난 거지?' 이런 혼잣말을 절로 하게 되는 탁월한 능력 말이다. 어떻게 저 순간, 저 상황에서 리더가 딱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적절한 언어에 실어, 분위기를 타면서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감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한숨을 쉬고 나면 '그래 분명 저건 내게 없는 능력이야. 하지만 나에게 저런 재주는 없고, 네 놈이 부럽진 않군' 대개는 이렇게 마무리하는 토막극 같은 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순간의 만족감을 주는 달콤한 말은 그 당시에는 리더를 구름방석 위에 앉혀 놓을 수 있겠지만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면전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놈을 미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나 바로 그 듣기 싫은 말이 리더의 리스크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에는 누구도 이걸 알 수 없고 시간이 지나 봐야 흐릿하게 입증될까 말까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그리하여 능력 기반 승진제를 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조직은 다수의 아부꾼과 소수의 소신파가 공존하는데, 실상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은 소수의 소신파라는 것. 알면서도 어떻게든 이용하려들고 타인을 잘 이용하는 기술이 찬사를 받는 이상한 조직 상황이 우리가 보는 실상이라는 것. 그곳에서 정치질이 탄생하고, 전리품이 나뉘고,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 당장의 이득을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
내가 느낀 바, 리더들은 면전의 달콤한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종종 잘못된 사고와 뜬금없는 결정을 하고 혼선과 리스크에 빠진다. 권력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쓰는 때와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화하지 못해서다. 이 경우 구성원은 자유의지를 상실하고 리더의 뜻에 동원되며 결국 대상화한다. 물론 모든 것을 대중의 의견에 맡기는 대중영합주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졸저 '통하는 학교 통하는 교실을 위한 교사 리더십'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원칙은 기본, 유연성은 양념', '지도성과 대중성의 통일', '공은 공, 사는 사'와 같은 꼭지에서 다루었었다. 문제는 꼭 이와 반대로 하는 리더도 있더란 말이지.
교차로에서 정지 신호를 받으면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 한다. 이 행위는 나도 안전하고 타인도 안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질주하고 싶은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고의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 아니던가. 누군가 당신의 귀에 달콤하게 속삭일지 모른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당신은 그럴 능력과 자격이 있어요. 고고, 투고, 스리고~'
그런데 많은 리더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능력과 자격을 착각하여 브레이크 대신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요컨대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리더는 늘 리스크라는 폭탄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상부구조와 하부토대를 막론하고 세상 곳곳에 이런 리더와 구성원들이 있다. 정지신호는 질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는 약속이자 장치다. 긴 다리를 건너기 전 잠시 멈추어 잡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