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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26. 2024

평가하되 비교하지 않기

'무엇을 아는가'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차이

옛 교컴의 자료 중 2012년 4월에 올린 '교실밖 교단일기'를 발견했다. 학생들의 '수행'에 대하여 교사가 확인해 주는 것이야 수업 과정에서 응당 해야 할 피드백이다. 그날 교단일기를 보니 확인 스탬프를 받은 아이들이 좋아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때도 수업 시간 중에 수행한 과제에 대하여 평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제를 잘 한 학생에겐 '잘했어요', 분발이 필요한 경우엔 '잘할 수 있어요'가 새겨진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대체로 5점 만점의 절대평가를 통해 성실하게 참여했으면 4-5점을, 참여한 흔적이 적을 경우 2-3점을 주었다. 수업 참여 상황에 대하여는 아이들이 잘 알았기 때문에 공정성을 두고 큰 불만은 없었다. 


다양한 모양의 스탬프


수행평가 축소와 지필평가 확대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긴 한데, 학습의 결과를 알아보는 방식은 다양하고, 특히 학습이 진행되는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고, 결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 지를 보는 것은 학생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아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평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을 가르쳤지만 간단한 영어로 피드백을 주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So Good!', 'So Cool!', 'So Fantastic!' 등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So Fantastic!'이나 'So Incredible!'을 기대했다. 가끔 애매할 때 'So...' 하고 뜸을 들이면 아이들이 먼저 'Fantastic!'을 외치기도 했는데 'So Good'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행을 어떻게 Fantastic 하다고 할 수가 있나... 


한참 뜸을 들이다가 "So.... So~"라고 하면 아이들이 난리가 났었지. "그건 Not Bad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샘 미워요." 이런 말을 듣기도 했지만 'So So'에서 'So Fantastic'에 이르는 수행의 차이를 아이들은 너무 잘 알았다. '과정중심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평가자가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의외로 아이들은 수행 결과의 차이를 잘 알았다. 아이들의 반응을 평균 내면 거의 교사의 평가와 일치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어땠을까. 어느 해 나는 대학 강의를 끊고 대학원 강의만 했는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상대평가 체제 때문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성적 이의 신청 기간'이 일주일쯤 주어졌는데 A플러스가 아닌 수강자는 거의 이의 신청을 했다. 대개는 "장학금을 받아야 하니까", "취업에서 불리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런 '쪼'도 있었지만 "제가 왜 아무개 학생보다 못한 성적을 받아야 하는 겁니꽈..."하는 항의도 많았다. 


상대평가는 수강자의 평균이 평균이 50점 이하라도 그중에서 A플러스가 나와야 하고, 반드시 몇 명은 C를 받아야 했거든. 난 늘 소논문 형태로 평가를 했는데, 정말로 내가 보기에 모두 A 이상을 주어도 손색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율에 맞추어 A, B, C 학점을 주어야 하니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다. 대학생이 돼서도 동료 학습자들끼리 경쟁을 하는 꼴이라니. 


교수들 중에는 일부를 선택형 객관식 문제로 (배배 꼬아서) 출제하여 변별력을 확보하고 성적 시비를 줄이고자 하였다. 하도 시달리다 보니 그런 퇴행이 나타났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서 말이다. 학부 강의는 안 한지 10년 이상 돼서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청년 다운 기개를 상실한 원인이 여럿 있겠지만 이런 '공정성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와 학교의 분위기가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평가하되 비교하지 말자는 말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교실밖 교단일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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