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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반컬티스트 Jan 25. 2018

[도시재생 키워드] 빈집, 예술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이에(家) 프로젝트.


일본어인 ‘이에’는 우리말로 ‘집’을 뜻한다. 우리말로 집 프로젝트, 영어로는 Art house project로 번역된다. 집에 예술을 접목한 것이다. 그것도 평범한 집이 아닌 버려진 집으로.


나오시마와 이누지마 섬 위치, 사진=http://www.toki.tokyo/blogt/2015/9/30/a-guide-to-naoshima


이에 프로젝트는 1998년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의 작은 섬 나오시마에서 처음 시작됐다. 나오시마의 빈집 7채가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손길에 의해 현대작품으로 재탄생했고, 인근의 섬 이누지마에도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그곳에서도 5채의 빈집들이 갤러리 겸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현재 나오시마와 이누지마 섬은 전 세계로부터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술작품이 된 빈집들은 관광객 뿐만 아니라 섬 주민들에게도 시각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두 섬에서 진행된 이에 프로젝트는 빈집에 예술을 접목한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왜 이들은 빈집이라는 소재를 이용했던 것일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이 빈집 문제를 겪었다. 우리나라 빈집 비율은 2015년 기준으로 6.5%. 일본은 이 두배가 넘는 수치인 13.5%를 2013년에 이미 넘어섰다. 2013년 기준 빈집 수만 830만 가구에 달한다. 2030년에는 그 비율이 3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만큼 빈집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 빈집 현황은 '[도시재생 키워드] 도시재생 빈집을 잡아라'편 참조)

하지만 우리보다 경험치가 쌓인 덕분인지, 일본은 빈집 문제를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 일본은 제어할 수 없이 불어나는 빈집을 전면 철거가 아닌, ‘활용’에 방점을 두었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나왔고, 그중 하나가 ‘예술’이었다. 이에 프로젝트는 빈집에 예술을 입힌 출발점과도 같았다.



나오시마 이에 프로젝트


‘예술의 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 건축가와 예술가들 사이에선 ‘현대미술의 성지’로 통한다. 나오시마에는 이에 프로젝트와 더불어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과 예술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지중 미술관'(상)과 큐사마 야요이의 '노랑호박'(하), 사진=베네세 홈페이지, 픽사베이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은 땅 속에 들어가 있는 미술관으로, ‘베네세 하우스’는 호텔의 기능이 접목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또한 미니멀리즘을 동양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미술작가 이우환의 작품을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이우환 미술관’도 있다.


이 외에도 나오시마하면 빠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 큐사마 야요이의 빨강호박과 노랑호박이다. 나오시마 항구에 위치해 있어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반겨준다. 호박 작품은 지난해 제주도에 찾아와, 많은 한국인에게도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나오시마는 매년 50여 만명이 다녀가는 유명 관광지이다. 하지만 과거엔 달랐다. 사람들로부터 버려져 쇠퇴한 작은 섬 일 뿐이었다. 지금은 4000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과거엔 200여명의 주민만 남을 정도로 인구 유출 현상이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


때는 30~40년 전으로 흘러간다. 1970년대 미쓰비시 광업이 나오시마에 구리 제련소를 설치했다. 그 이후 나오시마는 동양 최대의 금 생산지가 되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내 제련소로 인한 환경파괴가 심각해졌다. 제련소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과 공해 등은 나오시마 환경을 급속히 파괴했고, 배출된 유독가스는 섬의 식물들을 말라죽게까지 만들었다. 지역 주민까지도 살기 힘든 환경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0년대 들어서자, 구리 제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제련소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환경이 악화된 나오시마에서 거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젊은이들은 섬을 떠났고, 노인들만이 섬을 지켰다. 그렇게 나오시마는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섬이 됐다.


1985년 나오시마를 찾아간 후쿠다케 소이치로(좌)와 당시 나오시마 시장 치카츠고 미야케(우), 사진=http://benesse-artsite.jp/en/about/history.


다행히도 섬의 쇠락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일본 교육 출판기업 베네세 회장 후쿠다케 소이치였다. 그는 기업의 사회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나오시마를 문화의 섬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베네세 그룹은 나오시마 섬의 땅을 매입했고,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문화의 섬에 대한 설계를 전적으로 맡겼다. 1987년 아트를 활용한 다양한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그중 하나가 ‘이에 프로젝트’였다.


이에 프로젝트는 나오시마 섬의 중심에 위치한 혼무라 지구에서 진행됐다. 사람들이 섬을 떠나자, 빈집이 눈에 띄게 증가했던 곳이었다.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은 방치돼있던 빈집과 창고에 현대미술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을 했다. 1998년의 일이었다. 이들은 빈집의 단순한 공간 활용을 넘어서 빈집이 지녔던 역사와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이를 위해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받고, 함께 작품 활동을 하는 등 주민들과 협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야지마 타츠오의 <카도야>


1998년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2009년 작업을 마지막으로 총 7채의 빈집을 현대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집 한채 한채가 거대한 작품이면서 갤러리가 된 것이다. 과거 빈집이 무성했던 어촌이 이에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의 마을로 탈바꿈하면서 활력이 되살아났다. 이곳의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빈집 작품 위치를 안내해주고, 건물들을 관리하는 등 관련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누지마 이에 프로젝트


나오시마의 이에 프로젝트는 인근 이누지마 섬으로 이어졌다. 베네세가 나오시마에 이어, 제2의 문화의 섬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이누지마 섬은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에서 페리로 35분 소요되는 곳에 위치해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인지 나오시마의 흥망성쇠를 빼닮았다. 이누지마 역시 제련소와 채석업으로 발전한 섬이었다. 섬 둘레 3.6km, 면적으로는 0.54 km2의 작은 섬에 6000명에 달하는 인구가 살 정도였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섬은 쇠퇴했다.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제련소가 폐쇄됐고, 채석업도 뒤이어 사양산업이 됐다. 섬 인구는 급격히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현재는 50여명의 주민들만이 섬에 남아있다.


이누지마 전경


사람들에게 잊혀 가던 이누지마 섬은 베네세 그룹에 의해 지역의 새로운 명물로 재탄생했다. 버려진 제련소는 미술관이 됐고, 5채의 빈집이 예술가들의 현대 작품으로 변신했다.


‘문화의 섬’으로 명성을 얻은 나오시마와 이누지마 섬. 현재 이들은 인근 테시마 섬 등 주변의 여러 섬들과 함께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섬들의 예술작품과 예술제를 보러 찾아오고 있다. 이들의 ‘문화의 섬’으로서의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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