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화(localization)는 현시대 많은 문제점의 해결책이다
로컬지향(localization)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공부하기 위해 집어 들었던 책인데, 나에게 '도끼'가 됐다.
프란츠 카프카가 "책은 우리 안의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로컬의 미래>는 내가 학부생 때 배웠던 '무역'과 '세계화'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세계화가 문제 투성이라고 알려준 것이다. 학부 때 국제통상(무역)을 전공했는데, 무역과 글로벌 경영의 이로운 점은 배웠어도, 그 이면은 (내가 놓친걸 수도 있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1) 실종된 생계 보장 : 지방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대기업이 차지한다. 대기업이 매출액은 훨씬 높더라도, 같은 매출액 대비 고용인원은 지방 중/소기업보다 적다.
2) 심각한 환경 파괴 : 기업농으로 인한 표토 감소, 바다에 넘쳐나는 쓰레기, 탄소배출 증가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엔 너무 많을 정도로 환경 파괴는 심각한 문제가 됐다. 초미세먼지도 예외는 아니다.
3) 탄력을 상실한 경제 : 수출입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경제 불황과 같은 먼 나라에서 발생한 문제에도 영향을 받는다.
4) 무너진 민주주의 : WTO와 IMF 같은 각종 기구와 글로벌 기업은 시민이 선출하지 않았지만 정부보다 더 큰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시민이 뽑은 정치인 조차 기업과 은행에게 포섭되었다는 점이다. 그럼 국민의 권력은 어떻게 행사할 수 있을까.
5) 극심한 양극화 : 세계화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0명이 가난한 인구 30억 명 이상의 부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은 부패와 실업보다 불평등이 더 큰 사회 문제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30년도 안 됐는데, 불평등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6) 해로운 도시화 : 세계화로 농촌 경제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도시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들이 도시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확률은 낮다. 노동자를 몹시 착취하는 일자리는 많다. 대규모 도시 이동으로 대형 슬럼가도 생겼다. '개발도상'국의 슬럼가에는 10억 명이 살고 있다고. 또, 도시 내부의 수요는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이는 탄소배출을 늘리고 대규모의 쓰레기를 만든다.
이밖에 세계화는 식량안보의 위협, 건강 악화, 심리적 불안, 종족과 인종 갈등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수많은 보조금과 눈먼 비용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온 외국 상품이 국내 상품보다 더 저렴한 이유는, 각종 보조금 때문이다. 책에 나온 사례 하나를 소개하자면, 미국 정부는 1995년부터 2012년까지 해외로 수출하는 다섯 가지 곡물(옥수수, 면화, 쌀, 밀, 콩)에만 2560억 달러를 지원했다. 한데, 이 지원금의 대다수는 거대 기업농이 가져갔고, 지역 농부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위에 열거된 항목은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지기도 어렵고, 이러한 비용은 기업과 은행의 내부 비용으로 책정되지도 않는다. '외부비용'으로 뺀다. 그럼 그 비용은 누가 떠맡는가? 우리 사회와 환경이다. 우리의 세금으로, 지구의 희생으로 글로벌 기업이 성장한다.
저자는 문제의 공통 원인이 세계화이기 때문에, 글로벌에서 로컬로 방향을 바꾸는 '로컬화(지역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로컬화 localization'의 정의는,
1) 현재 거대 초국적 기업과 은행에 유리한 재정과 여타 지원을 끊는 것
2) 지역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고 수출 시장 의존도를 낮추는 것(고립주의, 보호주의, 무역 폐지가 아니다)이다.
글로벌 경영에서 말하는 '현지화(localization)'와 영어는 같지만 다른 뜻이다.
저자는 로컬화를 위한 전략으로 2가지를 언급한다. 풀뿌리 운동(bottom-up)과 정책 변화(top-down)이다. 전 세계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풀뿌리 활동의 몇 가지 사례가 소개된다.
1. 풀뿌리 활동의 사례
① 로컬 금융 : 공동체 은행과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주민들이 마을과 지역사회에 투자할 수 있는 금융기관 설립, 지역화폐 사용
② buy 로컬 :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북미의 '지역생활경제기업연합(BALLE)은 자영업체 약 3만 개가 조직한 연합체로, 컨퍼런스를 열어 소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창업, 운영 정보를 제공하고 열정을 나누고 자극을 받는다. 포틀랜드의 서포트랜드 네트워크 사례도 있다.
③ 로컬 에너지 : 로컬에서 소비할 에너지는 로컬에서 생산
④ 로컬 푸드 운동 : 농부-소비자 직거래 장터, Farm to Table, 로컬 유기농 먹거리 수요 증가, 청년 농부 증가
⑤ 로컬 미디어의 활약 : 로컬 미디어는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안을 알려주어, 시민들이 지역 사회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⑥ 대안 교육 : 대기업에 취업할 학생들을 길러내지도 않고, 통일된 교수법과 교과과정을 채택하지도 않는다. '숲속 학교'와 '루츠(ROOTS)학교'가 그 사례.
⑦ 로컬 기반의 보건 의료 : 전통 대체 의학을 가까이하고, 치료보다는 예방을 강조하는 지역기반 보건의료 체계가 있어야 한다.
⑧ 계획 공동체 : 생태마을, 전환마을과 같은 로컬 기반 계획 공동체
2. 정책 제안
① 대안 무역 : 앞으로 무역의 목적은 잉여 생산물을 시장에 공급하고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재화를 획득하는 것이 돼야 한다. 기업의 이윤과 GDP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② 지역 기반의 금융 체계 확립 : 지역민이 지역 사회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③ 건전한 경제 지표 적용 : GDP는 시장의 활동과 이동하는 돈의 총량만을 말해준다. 비용과 이익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비용이 올라도 GDP는 오른다. GDP 대신 '실질진보지표(GPI)'를 사용해야 한다. GPI는 기존의 지표에 중요한 경제, 환경, 사회 요소를 단일 체계에 넣어서 발전과 실패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이미 사용하고 있다.
④ 편파적인 세금 체계 개선 :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세금 우대를 받는다. 이러한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⑤ 재생 에너지의 분산 작업 : 거대 에너지 발전소보다는, 에너지원과 에너지가 쓰이는 장소를 가까이 둬야 한다.
⑥ 다품종 유기농 생산지의 확대 : 단일 품종 농업을 하는 기업농보다는, 소규모 다품종 농업을 장려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⑦ 토지 사용 규제의 합리적 개선 : 도시권 토지 용도 규정보다는, 공동체 기반 생활 방식을 기준으로 규정을 다시 정해야 한다.
이 밖에, 저자는 소규모 로컬 생산자를 위한 규제 완화, 시장과 공공장소에 투자, 로컬 미디어와 로컬 엔터테인먼트 지원, 로컬에 기반한 교육으로의 전환, 중앙 집중형 의료 체계의 개선을 정책으로 제안한다.
누군가는 헬레나가 제시하는 '로컬화'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기업과 은행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로컬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얘기다. 맞다. 하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있다. 책에 따르면,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중 몇몇 사례가 성공적으로 평가를 받고 널리 알려지면, 성공 사례를 따라 하려는 움직임도 늘어날 것이다. '로컬화'는 실현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