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플레이스들의 공통점
prologue | 지난해 처음 알게 된 표현이 있다. '이부망천'. 2018년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이 인천을 비하한 표현이다. '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는 뜻이란다. 이 표현을 두고 굉장히 시끄러웠다. 정 의원 발언에 대해 집단 소송을 준비한 인천 시민들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인(IN) 서울 못하는 사람들이 인천에 자리 잡아 사는 게 맞는 말'이라며 무기력한 패배감을 보여준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지방 간의 격차는 인천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독 인천은 수원·고양·안산 등의 수도권 지역보다 도시 가치가 절하된 측면이 있다. 특히, 인천에 거주하는 청장년층은 인천을 빠져나가 서울에서 문화소비생활을 하길 원하고, 또 그렇게 한다. 그래서 이번 글을 시작하게 됐다. 최근 인천도 서울 못지않게 힙플레이스가 생겨나고 있음을 기록하고 알리려고.
지난 편에서는 힙, 힙스터, 힙플레이스의 의미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힙플레이스라 불리는 곳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힙(hip)'이 지역/도시를 표현하는 형용사로 많이 사용된 건 2008년 이후였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대량생산과 금전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흐름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금전적, 물질적 가치보다 다른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만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다. 공적 무역 제품과 유기농 제품을 구매하고, 생산자와 직거래하려는 소비패턴이 증가하고, 사회적 이익을 고려하는 회사의 제품을 소비하는 등 '가치 소비'가 널리 퍼졌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탐스(TOMS)'가 급성장한 것도 이때이다. 브루클린과 포틀랜드 등 힙스터 문화가 미국에서 꽃을 피게 된 것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큰 배경이 됐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2010년 즈음부터 '힙스터가 살기 좋은 도시', '힙스터가 많은 도시' 등의 지표를 만들어 도시 간 순위를 매기고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힙플레이스를 선정하는 기준을 살펴볼 수 있다.
2016년, Infogruop이 수행한 'the most hipster city in America' 순위가 공개됐다. 이들은 인구 1백만이 넘는 도시 중 작은 양조장, 레코드 샵, 중고품 매장, 자전거 판매점, 문신 아티스트, 음악과 공연 엔터테인먼트가 많은 도시를 선정했고, 인구 10,000명당 힙스터가 좋아하는 평균 사업체 수에 따라 '힙스터 도시' 순위를 매겼다. 아래 그래프는 힙스터 도시 TOP10에 있는 사업체 수의 전체 규모를 보여준다. 포틀랜드는 전체 사업체수는 샌프란시스코보다 적지만, 인구만 명당 평균 사업체 수로 봤을 때는 포틀랜드가 더 많다.
2018년, Movebub에서는 자체 개발한 'hipster city Index'에 따라 도시 순위를 매겼다. 힙스터 지수는 인구 10만 명당 도시에 있는 채식주의를 할 수 있는 식당, 커피숍, 문신 스튜디오, 빈티지 부티크, 레코드 가게의 수를 합쳐서 산출한다. 이들의 데이터에 따르면 힙스터 지수 1위는 영국 브라이튼(brighton), 2위는 포틀랜드이다.
종합하면, 도시 내에 존재하는 작은 양조장, 레코드 샵, 중고품 매장, 자전거 판매점, 문신 아티스트, 음악과 공연 엔터테인먼트, 채식주의 식당, 부티크샵 등의 사업체 수가 사람들이 그곳을 '힙플레이스'로 인식하는 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힙플레이스의 공통점을 하나 도출할 수 있다. 다양한 개성 있는 독립상점이 많다는 것이다.
도시, 지역문화를 공부하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cobs)'이다. 2009년, '100명의 위대한 도시 사상가'중에서 1위로 선정된 도시 사상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 1950년대 미국의 도시계획 패러다임을 바꾼 분이시다. 당시 미국은 낙후된 지역을 전면 철거하고, 새롭게 건물을 세우는 방식을 취했다. 당시 도시계획가들에게 저소득층, 흑인, 다인종이 모여사는 곳은 '철거해야 할 대상'일뿐이었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는 그러한 도시계획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며, 전면철거는 지역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것이라며 날 서게 비판했다. 그녀는 쇠퇴하는 지역을 재생하기 위해선 지역의 공동체와 역사문화자원, 근린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녀가 주장했던 것들이 현재 도시재생의 주요 담론들의 토대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녀는 도시를 재생하기 위해선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며, 이 다양성을 만드는 4가지 요건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 서술했다.
그중 하나가 '오래된 건물'의 존재이다.
왜 오래된 건물이 필요할까? 임대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건축 연한이 오래돼서 감가상각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이 있는 지역은 젊은 예술가 및 청년들이 불확실하지만 도전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반면, 신축 건물은 높은 간접비 때문에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체들이 입주한다. 체인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외 힙스터 도시의 사례를 봐도, 오래된 건물과 저렴한 임대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힙스터 도시 포틀랜드, 국내 연남동·성수동·을지로 모두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은 지역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다른 지역보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예술가/청년들이 자신의 가게를 실험적으로 운영해볼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옛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뉴트로(New-tro)'의 트렌드가 겹치면서, 임대료가 저렴하지 않아도 일부러 오래된 공간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힙플레이스로 떠오른 연남동, 성수동, 을지로의 공통점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인근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상권이 있다는 것이다. 연남동은 홍대 상권이, 성수동은 건대상권이, 을지로는 세운상가가 있다. 특히 을지로는 서울시가 진행하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을지로 방문객 유입에 큰 역할을 했다.
힙플레이스 주변에 중심상권이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중심상권에 있던 유동인구를 가까운 힙플레이스로 유입시키기에 비교적 쉽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중심상권에서 내몰린 청년/예술가들이 그들의 활동 터전을 옮긴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들은 임대료가 올라가면, 주변에 저렴한 임대료를 제공하는 지역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힙플레이스의 공통점은 1) 다양한 독립상점의 존재, 2) 오래된 건물과 저렴한 임대료, 3) 좋은 접근성과 인접한 중심상권이다. 사실 이 세 가지는 같은 층위에 있지 않고, 인과관계가 있다. 저렴한 임대료가 있는 지역에 다양한 독립상점들이 생기고(임대료가 낮다고 무조건 힙플레이스가 되는 건 아니다) → 이러한 지역이 '핫플레이스'가 되면 → 임대료가 올라간다. → 그러면 독립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인근에 저렴한 임대료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고 → 독립상점들이 모이면 다시 '핫플레이스'가 되고....
이러한 반복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데, 이건 다음 편에서 다뤄보겠다.
참고문헌
김영준, 2017, 『골목의 전쟁-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스마트북스
모종린, 2017, 『골목길 자본론』, 다산
사쿠마 유미코(문희언 역), 2016, 『힙한 생활혁명』, haru
야마자키 미츠히로(손예리 역), 2017,『포틀랜드, 내 삶을 바꾸는 도시 혁명』, 어젠다
제인 제이콥스(유강은 역), 2010,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박찬용, ‘서울형 힙타운 공식’, 에스콰이어, 2016.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