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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Jun 18. 2021

나는 왜 여행이 이토록 그리울까

2019년 12월 나는 비행기가 지겹다고 생각했었다

2021년 6월 즈음이 되자 여행이 가고싶어 미치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종일 티비처럼 여행 브이로그를 틀었다. 더이상 볼 영상이 없을 정도였다. 파리와 뉴욕, 홍콩과 싱가폴이 배경인 영상이라면 가리지 않고 틀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약 5년간 나에게 여행은 고단한 일상을 지탱해주는 마약이자 결국에는 밥벌이까지 되어버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특히나 2018년과 2019년에는 잦은 출장과 휴가들로 매달 비행기를 탔다. 한달에 두번 탔던 적도 있었다. 일년의 반은 해외에 있어서 친구들이 카톡할때 첫마디는 항상 이거였다.

야 너 지금 서울이야?


이스탄불의 바다
파리 느낌 낭낭한
어딜 가도 좋았던 파리
홍콩 그리운 홍콩

2019년 12월,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를 당분간 타고 싶지 않아'라고 느낀 것은. 일주일 일정이면 7번 비행기를 타야하는 고된 출장 생활을 3년 하고나자 공항에 가는 것이 더 이상 설레지 않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서 촬영하는게 업이었던 나는 탑승 게이트에서 줄을 서는 시간이 제일 싫은 사람이 되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인 여행이 이전만큼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자 나는 인생에서 엄청 중요한 것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드시 두통을 낫게 해주던 알약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는 느낌. 행복의 마지막 보루가 사라진 기분. 


그래서 난 2019년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타이베이에 다녀온 뒤, 이례적으로 다음해 휴가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다. '여행을 준비하는게 다시 설렐 때까지 참을거야' 생각하며. 그게 18개월이 넘어갈줄은 아무도 몰랐지.


자의로 시작한지 한달만에 타의가 된 여행중단은 초반 1년 동안은 그간의 누적포인트로 참을만했다가, 올해 초부터 슬슬 바닥을 드러내 지금은 필사적인 지경에 이르렀다.


지만 정말 기쁜건, 설렘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다시 여행을 해도 빈틈없이 행복할 것 같다. 여행이 간절해지니 여행지에서 나를 행복하게 했던 사소하고 작은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고 하나하나 다 소중히 여겨니까.

날씨가 끝내주던 3월의 홍콩, 엄마와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타서 느끼던 그 햇살, 너무나 사랑하는 그 도시의 풍경

언제나 예고없이 자주도 지나가던 파리의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그 길 위의 무심한 카페에서 마시던 아메리카노. 그리고 끝내주는 뺑오쇼콜라.

로마 거리에서 들리는 특유의 이탈리아어의 억양. 젤라또. 베이지색의 돌건물들. 절대 제 시간에 오지않는 버스와 툭 하면 폐쇄되는 1호선.

하루 일정을 끝내고 숙소 들어가는 길에 사가던 일본 편의점 야식들. 빛나는 야경을 보며 무작정 걷던 싱가폴의 습하고 더운 밤. 오토바이 소리에 잠에서 깨던 하노이의 작은 호텔방. 깊은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감성이 가득했던 타이베이의 카페들. 방콕 고가도로 아래 작은 포장마차에서 먹던 팟타이와 수박주스. 비긴어게인 OST를 들으며 베이글을 먹으러 가던 뉴욕 거리 어딘가. 뉴저지의 숙소에서 일찍 일어나 맨하튼 스카이라인을 보며 조깅하던 아침.

그 속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충만하게 받았던 순간들. 진짜로 웃고 있던 나.

 

타이베이의 골목에서
타고싶은 홍콩택시
언제나 벅찬 뉴욕
로마의 그리운 돌바닥
싱가폴의 밤은 진리지
덥고 습해도 좋아

아빠는 언젠가 말했었다. 좋은 직장, 많은 월급, 안정된 생활도 중요하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거라고. 사는 동안 몇 번이라도 그 짜릿함을 뼛속까지 느낄 수 있어야 잘 살고 있는거라고.


나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은 역시 여행이었던거다. 국 내가 돌아갈 곳도 길 위일 것이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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