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박물관
전시나 문화유산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도 자주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인물이 있다. 나에게는 단원 김홍도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만큼 당대에 활발한 활동으로 이름을 남겼을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사 김정희도 비슷한 경우다. 특히 세한도와 그에 얽힌 이야기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부터 잊을만하면 듣게 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절 곤궁한 처지에 놓였음에도 중국에서 귀중한 책을 구해주는 등 변치 않는 마음으로 자신을 위해 애써준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으로 조선 후기 문인화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세한도는 1844년에 그려졌는데, 이후 몇차례 주인이 바뀌고 일본인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감사하게도 지난 2020년 소장자였던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 조건 없는 기증을 결정하시면서 우리 모두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런 세한도가 이번 전시로 178년만에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아직도 세한도를 보지 못 한 나로서는 세한도가 탄생한 곳에서 세한도를 처음으로 보게 된다면 정말 낭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리두기도 풀리고 날씨도 좋아진 김에 제주도를 가겠다고 결심했고, 주말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에 도착한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직행했다.
아침엔 날이 선선하고 하늘도 푸르고 날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팔을 벌리고 있는 귀여운 돌하르방도 반갑다.
상설전시실도 돌아볼 예정이었으나 아무래도 주요한 목적은 세한도 전시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획전시실을 먼저 찾았다.
처음에 나오는 것은 짧은 영상. 제주도의 풍광과 세한의 의미 등을 볼 수 있다.
국중박 특별전이 열릴 때마다 자주 볼 수 있는 프랑스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장 줄리앙 푸스의 영상 작품 [세한의 시간]이다.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성찰 고정을 제주도 풍경에 은유적으로 녹여냈다"고 한다. 7분가량의 작품인데 앞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넋 놓고 봤다. 뭔가 마음이 착 가라 앉는 느낌.
스크린 두 개 중 하나가 약간 비스듬하게 놓여 서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는 형태인데 관람객들이 그 두 스크린 사이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 재밌었다.
이동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엄청난 길이의 진열장이다.
보통 '세한도'라고 말하면 어딘가 휑한 모습의 그림 한 점만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 그림이 포함된 '세한도 두루마리'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 두루마리는 총 15m에 달한다. 이는 원작 그림에 청나라 명사 16인과 우리나라 명사 4인의 감상문이 더해진 결과다. 그 긴 두루마리를 펼쳐 놓게 되니 한 쪽 벽면을 진열장이 길게 채우고 있는 것.
세한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위 사진은 그 중 첫번째 부분으로 20세기 초 세한도의 소유권을 갖게 된 김준학이 제목과 시를 써 놓은 부분이다.
한자를 모르는 탓에 서화 보는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제목으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완당(김정희)세한도' 정도는 눈치껏 읽을 수 있었다.
이제 그림 세한도가 나온다. 조용하고 쓸쓸한 겨울날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화면을 채운 것은 많지 않지만 텅 빈 공간에서도 분노인지 체념인지 모를 유배살이의 깝깝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여느 고서화의 부드럽고 유연한 필선과는 다르게 마치 미술용 4B연필로 슥슥 그린 건가 싶을 정도로 거칠고 건조한 필선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건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표현한 기법이라고 한다. 마른 붓을 다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니 김정희의 내공을 알 수 있는 부분.
그림 한가운데 묘하게 생긴 집 옆으로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 요소인 측백나무와 소나무가 두 그루씩 자리를 잡고 있다. 풍성하거나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초라해보이지는 않는 기품을 지녔고 무엇보다 '저 나무들 마저 없었으면 동네가 완전 텅텅 비었겠네' 싶은 생각이 들어 왠지 모를 안도감까지 느껴졌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말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림 옆에는 김정희가 직접 쓴 글이 남아 있다. 그림을 그린 배경, 작품에 담긴 의도 등을 적었다.
마지막 세번째는 청나라와 우리나라 명사들의 감상문이 담긴 부분이다. 위에 적힌 국문 설명과 맞춰가며 천천히 읽으면 된다. 지면의 한계로 모든 내용이 번역되어있는 것 같진 않은데 감상문을 남긴 인물이 각각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떻게 역사에 남아있는지까지 간단하게나마 설명하고 있다. 딱히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한가닥하셨던 분들이겠지...?
한국 명사 3인의 감상문은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4년, 유명한 서예가인 손재형 선생이 일본인 학자인 후지쓰카 지카시로부터 세한도를 돌려받고 난 뒤 적힌 것이다. 여기에는 그래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 선생이나 역사학자인 위당 정인보 선생처럼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두 분 다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다보니 이와 관련된 소회가 묻어나는 듯하다.
약간의 전시품이 더 나온다. 한쪽 벽에는 추사 곁을 지킨 제자와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화가이자 제자였던 허련이 그린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이 옆에는 영상실도 하나 있고 추사 김정희의 삶과 세한도를 다루는 짧은 영상이 나오고 있다. 감상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여기는 추사를 흠숭했던 후대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아까 이름이 살짝 언급된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 이야기가 간단하게나마 더 나온다.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이기도 하고 이 분이 일본인이라 한국인 입장에서 평가하기에 약간 어색한 기운이 감돌기는 하지만, 추사에 대한 존경을 담아 연구와 재평가를 이어갔던 그의 진심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역시 추사 김정희가 그리고 손창근 선생이 기증한 '불이선란도'다. 난초 그림 옆에는 세한도와 비슷하게 그림을 그린 배경 등을 적어두었다. 그림만 볼 것이 아니라 글씨의 예술성, 그리고 글씨와 그림이 함께 맞추는 균형감과 조화를 즐겨야 한다고 한다.
제주도에 남은 추사 김정희의 흔적을 따라가 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전시가 끝난다.
'제주도의 세한도'를 보겠다고 모처럼 비행기 여행에 다소 무리한 당일치기 일정까지 짜서 간 나로서는 약간 기대와는 다른 부분이 없지 않았다. 제주도와 추사, 그리고 세한도 사이의 스토리텔링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만, 이번 전시가 지난 2020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의 순회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는 간다. 사진이나 영상을 더 추가하자면 이게 또 기존 전시의 톤 앤 매너에 맞춰야 하니 작은 것 하나도 더하고 빼기가 무척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두 눈으로 직접 본 세한도 만큼은 명불허전이었다. 역시 작품에 얽힌 스토리가 구체적으로 남아있어서인지 엄청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추사나 송백과 같은 절의를 잃지 않았던 이상적의 입장이 되어보고 만약 내가 그들의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했을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상상하면 가슴 한편이 땃땃해지다가도 이내 재능도 인품도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어느 한쪽처럼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마음이 짜게 식어버리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전시 규모와 '굳이 제주도에서 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하는 약간의 섭섭함을 제외하면 세한도라는 작품 자체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중하고 귀한 기회였다. 전시는 무료이며 5월 29일까지 진행되니, 그 기간에 제주도에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다만 나처럼 이 전시만을 위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하는 무리수는 두지 말기를 당부드린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도 볼 기회가 차차 생기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