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부엉씨 May 19. 2022

어느 수집가의 초대(1)

국립중앙박물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많은 관심과 찬사를 받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에 다녀왔다.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라 좀 지겹기는 한데, 지난해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전시를 못 봤기 때문에 아주 애가 달은 상태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지난해 열린 전시의 전시품 해설서를 받아보니 당시에는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고미술품을 소개하는 성격의 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는 그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일단 외형적으로 작년에 중박에서 전시된 고미술품에 그만큼의 현대미술품이 추가되어 규모가 상당히 불어났다. 내용적으로는 고미술, 현대미술 가리지 않고 방대한 규모의 이건희 컬렉션을 박물관이 나름대로 분석하고 분류하여 컬렉터(수집가) 이건희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상설전시실 반대편에 있는 기획전시실로 찾아가면 된다. 나는 인터파크를 통해 온라인 예매를 했으나 현장 예매로 표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다만 평일 기준으로 관람을 원하는 회차 1~2시간 전에는 찾아가야 표를 구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오후 6시 전시를 보길 원한다면 오후 4시~5시 사이에는 매표소에 가서 표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남는 시간에 사유의 방 등 상설전시를 돌아보면 되는 일이니 일찌감치 오는 것도 좋아 보인다.

전시장 입구. 단정한 하얀 톤에 입구 안쪽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석인상의 모습이 눈에 띈다. 석인상 옆에는 "집으로 가는 길, 벅수가 여러분을 맞이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벅수는 장승의 다르게 부르는 말이라고. 벅수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데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장승의 스테레오타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어서 재밌었다.


석인상 옆으로 보면 통로가 하나 더 있고, 통로 옆벽에는 창문이 있으며, 맞은편에 문 모양의 조각이 하나 걸려있다. 


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어느 수집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의 환대와 안내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기획됐다. 전시실 내부 구조도 그렇고 전시품 설명부터 벽면에 적혀 있는 텍스트까지 대부분 집주인, 그러니까 수집가가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톤을 유지하고 있어 이 부분도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응접실로 보이는 첫 번째 공간. 한쪽에 가족을 테마로 한 작품이 모여 있고 중앙에는 테이블과 테이블 맞은편에 작은 정원이 꾸려진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톤이 하얀색인 것을 보면 생전에 백자를 특히 좋아했다는 이건희 회장의 취향을 반영한 것 아닌가 싶다.

테이블에 앉아서 옆을 돌아보면 정원도 볼 수 있는 구조. 테이블 옆의 벽에는 이건희 에세이에서 발췌한 문구가 걸려있다. 응접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연출. 적혀 있는 문구도 여러 번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었다.


정원에는 귀여운 동자석들이 놓여있어서 동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한참 젤다 야숨을 플레이하고 있던 시기여서 야숨 생각이 났다... 코로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1부와 2부 전반부까지는 이렇게 넓은 공간에서 작은방으로 동선이 이어지는 형태로 되어 있다.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구조와 문틀의 모습도 재밌었다. 각 방마다의 분위기도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공간에 전시된 전시품 간의 상관관계나 콘셉트를 추측하며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달'을 연상할 수 있는 세 작품. 일반적인 동선상 첫 번째 방에서 볼 수 있다.



전시품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게 적혀 있다. 작가나 제작 방식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집가가 자신의 수집품을 정리해둔 노트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만큼이나 텍스트도 공들여 봐야될 것 같다.

1부 전시 마지막에는 유명한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다. 어두컴컴한 전시실 바닥에도 영상이 재생되고 있어 많은 분들이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으시더라. 방이 좁지 않고 조명도 은은하게 예쁜 만큼 사진 많이 찍으면 좋을 것 같은 곳이다.

"수련이 있는 연못"을 마지막으로 1부 전시가 끝나고 2부로 이동한다. 2부의 경우 네 파트로 이뤄져 있다. 위의 설명만 봐서는 전체적으로 시선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이동하는 구성이 아닐까 싶지만 내가 이날 시간이 부족해서 세 번째와 네 번째 파트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후반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2부 첫 번째, 두 번째 주제의 경우 약간 구분이 모호하긴 한데(대개 회화는 첫 번째 주제, 도자기는 두 번째 주제로 봐야 할 듯하다) 아무튼 많은 수의 작품을 저렇게 분류해 놓았다는 말이니 각 파트마다 감상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되겠다.

자연을 재현 또는 모방하거나, 즐기거나, 의미를 담는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인간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첫 번째 파트다. 이중섭의 "황소"를 비롯해서 유명하고 재밌고 멋있는 현대 미술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2부의 전시 디자인은 1부에 비해 톤이 좀 다운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전시의 전시실에 가까워지는 모습. 아무래도 워낙 전시품의 가짓수가 많고 다양하다 보니 작품에 대해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닐까 싶다. 다만, 홀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동선 구성은 1부와 마찬가지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걸작으로 꼽히는 인왕제색도다. 정선이 장맛비가 그친 날 인왕산을 올려다보며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을 실제로 보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별도의 전시실에서 전시되는 가운데, 전시실 한편에 감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디스플레이가 있어 참고할 수 있었다.


인왕제색도는 5월 31일까지만 전시된다. [계절 공감]이라는 테마로 매달 그림이 교체되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추성부도(가을), 불국설경(겨울), 화접도(봄)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와 비슷하게 전시 후반부의 종교미술 부분에서 고려불화도 교체된다.  6월 30일까지는 수월관음도가 전시되며, 7월 1일부터 8월 28일까지는 천수관음도가 전시된다. 이렇게 전시품을 활발하게 교체하는 것은 물론 빛에 약한 서화의 보존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정말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주겠다는 기획 측의 의지도 반영된 것 아닐까 싶다.

2부 전시실 한쪽 벽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때도 상당히 보기가 예쁜데, 가까이서 보면 더 재밌다.

도자기 앞쪽에 간단간단하게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도자기의 역사를 아주 직관적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래전, "무엇인가 담을 그릇이 필요"해서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인간이 점차 다양한 소재와 기술로 도자기를 예술의 경지까지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실제 예시와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


시각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교감 및 활용'이라는 테마와도 잘 맞아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도자류를 비롯해 고미술품이 다량 전시되어 있을 경우 이게 국보나 보물 같은 지정문화재가 아니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잘 모르는 사람도 발길을 멈추고 들여다볼만한 구실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 자체가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2부까지 다 보니 저녁 9시가 됐다. 곧 박물관 문을 닫는다는 얘기에 황급히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못 본 부분은 6월 말 추가로 예매해 둔 표가 있으니 그때 가서 볼 생각이다. 그래도 한 큐에 흐름을 딱 봤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쉬울 따름...


전시를 다 못 본 것도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많았던 인파에 전시품 하나하나를 음미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은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인상과 디자인, 콘셉트를 위주로 다뤘다. 끝나기 전에 두세 번 더 볼 생각이니 그때마다 나도 감상법을 바꿔서 포스팅을 적어 봐야지.


많은 볼거리를 잘 엮어낸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콘텐츠와 훌륭한 기획이 잘 어우러진, 올해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꼽고 싶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이 많은 미술품을 한 사람의 의지로 다 모을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물론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양과 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보도나 전해 들은 이야기로 접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믿기 힘든 정도였다.

이는 곧 자연스럽게 '왜?'라는 의문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전시는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 리움미술관 개관 축사 등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여기에도 나름 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걸 무슨 딱 깔끔한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가족, 개인의 취향, 자연, 인간으로 분류해놓은 전시 흐름을 통해 이건희라는 수집가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미술품을 수집했을지 추측하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전시를 통해 느껴진 것들이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겠다. 그냥 정말 되는대로 막 모은 것일 수도 있고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재벌,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가 아닌 우리에게 지금까지 비교적 덜 알려졌던 '수집가 이건희'의 구체적인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고, 더 나아가 미술품 수집과 기증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담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이 전시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다.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고...


아무튼 다음에 갔을 땐 전시품도 좀 자세히 뜯어보고 사진도 더 잘 찍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秋史와 제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