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덕>에 대한 단상
명은의 진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상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자신이 쓴 글이 만인에게 공개되는 순간 가족들이 받게 될 상처가 명은에게는 가장 큰 문제다. 명은은 여기서 윤리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녀는 수상을 포기한다. 언덕에 올라가서 자신의 수상 원고를 묻어 버린다. 가족의 비밀이 담긴 그 글을 말이다. 자기 대신 혜진 자매가 수상하며 그들의 글이 공개 석상에서 낭독되는 모습을 보며 명은은 비로소 평온한 미소를 짓는다.
이 영화는 글을 쓰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도덕적 딜레마를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진실과 상처”의 문제다. 이 갈등이 성인이 아닌, 어린이의 모습으로 표현되기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성인이 되면서 솔직할 수 없는 가식은 수십 겹의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좀처럼 그 실체를 알아차리기 어렵게 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진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나는 명은이 대상을 포기하고 다른 글로 입상을 수상한 직후에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가족에게 뛰어가는 장면에서 한 번 더 무너지고 말았다. 가족들이 심드렁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해맑게 뛰어가는 것이다. 시장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주 작은 미소로 “잘했네”라고 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