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시대의_일잘러 #6세딸을둔워킹맘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마케터, 제 일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이혜경 픽네일 마케터
결혼 전에는 잡지 에디터였다. 독자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책자에 예쁘게 모아 담는 일이 몹시 즐거웠다. 에디터로 일하며 길러진 기획력과 심미안으로 출산 후에는 마케터가 됐다. 이제 한 회사의 브랜드를 대중이 좋아할 수 있도록 가꾸고 드러내는 일을 한다. 머신러닝 기반 모션 인식기술 스타트업 샐터스의 이혜경 님은 네일 피팅/검색/쇼핑몰 모음 앱 ‘픽네일’을 세상에 알리는 마케터다. 그녀는 사람들이 네일아트를 떠올리는 순간마다 픽네일과 함께하는 날이 오길 꿈꾸고 있다.
삼정전자의 C-Lab 사내 벤처를 시작으로 육성된 스타트업이에요. 특히 손 영상인식에 관한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고요. 이 기술을 활용해 네일 스티커를 검색, 피팅해보고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앱 ‘픽네일’ 서비스를 런칭했어요. 보통 네일 스티커는 그저 포장된 제품을 보고 사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는데, 픽네일을 활용하면 자기 손에 마음에 드는 스티커를 피팅해볼 수 있어요. 패션에 ‘지그재그’ 앱이 있다면 네일 스티커에는 ‘픽네일’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는 샐터스에서 픽네일 브랜딩과 마케팅, SNS 채널 및 캠페인 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지금은 폐간된 <신디더퍼키>라는 잡지에서 수석 에디터로 일했고, 잡지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면서부터는 (주)서울문화사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주)엘지생활건강, CJ(주) 등의 기업체 사보나 고객 매거진 등을 수주해 제작하는 일을 5년쯤 했어요. 에디터로 있을 땐 일하는 게 마냥 즐거웠는데, 비딩 업무를 맡은 뒤로는 매번 경쟁을 해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때 결혼해서 임신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과감히 사표를 제출했어요. 15년간 쉬지 않고 일만 했으니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퇴사를 하자마자 아이가 생긴 거예요. 덕분에 1년간 휴식 기간을 가졌어요.
진짜 좋았어요. 그때 남편도 일을 안 하고 둘이 전국 여행을 했거든요. 평일에는 여행 다니고 주말에 잠깐 집에 와서 빨래하고, 짐 챙겨 나가는 생활을 1년간 한 거예요. 복작복작한 서울에서 살다가 여백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니까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자체로 자극이 되더라고요. 부부 중 누구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아둔 돈을 쓰면서 살았는데요.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만큼 누려도 된다는 생각으로 지냈어요. 돈은 또 벌면 되니까요.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게 천만다행이에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거든요.
출산하고 100일이 채 안 됐을 때 (주)이폴리움 ‘디밤비’라는 프리미엄 유아동 용품 쇼핑몰에서 입사 제안이 왔어요. ‘에르고 베이비’ ‘야마토야’ 등 엄마들 사이에서 핫한 브랜드를 수입‧유통하는 곳인데 대표님께서 외부에 의지하는 광고가 아닌, 브랜드 자체적으로 미디어를 만들기 위해 컨텐츠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오랫동안 매거진 제작을 했으니 사업의 적격자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 마케팅팀에 입사해 팀장으로 3년간 근무하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생리, 리더의 역할, 디지털 기반의 콘텐츠 제작 등 많은 것을 배웠어요.
반가운 제안이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요. 1년간 푹 쉬며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고, 매거진 시장이 하락세라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거든요. 아무리 에디터로 일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종이매체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게 새로운 기회로 느껴졌어요.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온 제안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친정엄마가 전적으로 아기를 봐주셨기 때문에 깊은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간 회사에서는 어땠나요?
좌충우돌이었죠.(웃음) 1년간 유유자적하며 쉰 데다, 아이 낳고 머리가 텅 빈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려니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이전 경력과는 다른 필드였고, 팀장까지 맡았잖아요. 당시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죠. 어쨌든 제가 입사하겠다고 우긴 게 아니라 회사가 저를 뽑은 거잖아요.(웃음) 그러니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마케팅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부딪히며 일을 배웠어요. 그렇게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죠. 심지어 저는 유축도 했거든요.(웃음) 마치 호수 위의 백조처럼 겉으로는 꼿꼿한 척하면서 보이지 않는 데서는 무던히 애를 쓴 시간이었어요.
아니에요. 팀이 없어져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죠. 퇴사 후에는 에디터 후배와 ‘엄마들을 위한 미디어’를 제작하기 위해 힘썼어요. 유아용품 회사의 마케팅을 담당하며 ‘이 물건을 사야 좋은 양육을 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늘 마음에 걸렸었거든요. 좋은 양육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함께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 육아 콘텐츠가 담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고 1년간 노력했는데 투자처를 찾지 못해 무산됐어요.
맞아요. 좋은 플랫폼인 것 같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막상 준비하던 일이 어려워지니 위커넥트가 떠오르더라고요. 커리어는 보유하고 있지만,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는데 ‘엄마도 경력’이라는 말에 힘을 얻었어요. 내게 꼭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문을 두드렸고, 덕분에 샐터스에 취직할 수 있었죠.
일의 울타리가 광범위해져서 처음엔 좀 낯설었어요. 아무래도 큰 회사는 모든 일이 분업화돼있고, 체계가 잡혀있기 때문에 핵심적인 업무 외의 일들은 제가 처리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데 샐터스는 스타트업이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겨야 하는 일이 많아요. 사실 알고 보면 쉬운 일인데도, 해본 적이 없어서 두려워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이런 점이 좋아요. 마케팅에 대한 A-Z까지 모두 해볼 수 있다는 게 너무 값진 일이라서요. 일단 한 번 경험하면 두려움이 없어지잖아요. 익숙한 분야가 점점 많아진다는 게 기쁘고 즐거워요.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공식적인 업무시간이지만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어요. 재택근무도 가능하고요. 워킹맘에게는 유연한 근무환경만큼 좋은 복지가 없는 것 같아요. 회사 분위기도 무척 좋아요. 조직원 수가 적은 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고, 조금 부족해도 기다려주는 태도에서 많은 걸 배워요. 낯선 분야에 맞닥뜨리면 아무래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데, 제가 포기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회사에서 저를 믿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퍼포먼스 마케팅 업무를 하려면 GA(구글 애널리틱스) 등을 사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제게 익숙한 업무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걱정했더니 대표님이 ‘같이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데이터를 분석해서 퍼포먼스를 내고 있어요. GA 외에도 페이스북 애즈, 애플 서치 애즈, 페이스북 애널리틱스 등도 살펴보고 있고요. 사실 이건 제가 담당해야 할 업무인데, 혼자 해결하라고 맡기는 게 아니라 “함께 하자”면서 저를 지지하고 북돋워주는 거잖아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얼마 전에는 회사에서 <트레바리> 마케팅 그룹도 참여할 수 있도록 신청을 해줬어요. 덕분에 업무적으로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마케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나 재화의 구매 버튼을 누르게 하는 사람이잖아요. 한때는 그 부분에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꾸준히 좋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특히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면서 ‘나는 무언가의 혹은 누군가의 팬(fan)이야’라는 마음이 희석되잖아요. 꾸준히 무엇을 좋아하고, 당당하게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거예요. 마케터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저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뾰족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아는 게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분명 도움이 된다고 믿어요.
명상이요. 비단 워킹맘뿐만 아니라 일하는 여성에게 명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샐터스에 다니면서 명상을 시작했어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다 보니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명상 앱을 출퇴근길에 듣고 있는데요. 덕분에 순간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또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일만 보 걷기를 해요. 햇빛을 많이 받으려 노력하고요. 얼핏 생각하면 일의 스킬은 아니지만 저는 그 어떤 툴을 배우는 것보다,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아이와 같이 명상하고 운동해요. 엄마의 취미와 아이의 취미를 별개로 두지 않고 함께 하다 보니 아이도 좋아하고, 저도 스트레스를 덜 받더라고요.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은요?
픽네일은 네일아트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에 여름이 피크거든요. 다가오는 여름에는 수많은 이들의 입에 픽네일이 오르내리고, 네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국민 앱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육아를 하면서는 성공의 경험을 갖기가 어렵잖아요. 이제 엄마를 떠나 샐터스의 마케터로서 성공의 경험을 맛보고 싶어요. 가까운 계획으로는 이번 여름을 위해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한 바이럴 영상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6월에는 망원동에서 픽네일 팝업스토어도 열릴 예정이고요. 여러 네일 브랜드와도 느슨한 연대를 맺어 함께할 계획이라 기대를 가지고 준비하는 중이에요.
회사를 구할 때 ‘있어빌리티’를 따지는 세상은 지났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름 있는 회사에 가는 것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스타트업은 성취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좋은 일터예요. 함께 성장할 수도 있고요. 특히 저는 스타트업에 다니며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규모가 있는 회사에 있을 땐 정체성을 숨기고 빈틈없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거든요. 그만큼 직원들 사이에 신뢰가 두텁고 열려있어요. 저는 마케팅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용어나 툴에 익숙하지 않고, 샐터스 개발자 분들이 사용하는 개발 언어도 어려워요. 영어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면서부터 조금씩 더 성장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또 스타트업 같은 혁신적인 조직은 근무조건이 유연한 경우가 많잖아요. 워킹맘에게는 정말 좋은 조건이니, 얼마든지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네, 긍정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이번 인터뷰 제안을 받고 그동안의 커리어를 쭉 돌아봤는데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까지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도 ‘다 괜찮아, 할 수 있다’고 나를 다독이면서요. 어떤 일을 하든 내 마음이 제일 소중해요. 나를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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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다양한 매체에서 글이 중심이 된 콘텐츠를 제작했다. 독립잡지 <나이이즘>의 에디터로 참여했고, <채널예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은 워킹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