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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connect Jul 01. 2020

"세상이 변하는 만큼,
일도 변하는 것 같아요"

#성실꼼꼼의아이콘 #밀레니얼세대와_일하는_X세대


세상이 변하는 만큼, 일도 변하는 것 같아요.


네모연구소 경영지원 담당자 서명주


네모연구소 경영지원 담당자 서명주

“옛날에는 안 그랬거든요.” 네모연구소의 경영지원 담당자 서명주 님이 말했다. 사회생활 25년 차인 그녀는 네모연구소에 입사한 이후 격세지감을 느낀단다. 수기로 모든 걸 기록해 장부를 만들던 시대가 기억에 생생한데, 이제는 처음 접하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익숙한 업무를 낯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벤처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인쇄출판을 하는 젊은 기업, 네모연구소에 입사한 지 10개월째. 그녀는 단단한 연륜 위에 ‘요즘 것들’의 업무 스킬을 쌓아 올리는 중이다.







오늘 재택근무 하는 날이시라고요. 코로나19 때문인가요?


아니에요. 탄력근무제로 일주일 중 하루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요. 입사 초기에는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했는데, 하루 근무 시간이 6시간으로 짧다 보니 직원 중 저만 연차일수가 적은 거예요. 그래서 출근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고, 일주일에 하루만 1시간씩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어요.



와 너무 좋네요! 네모연구소도 근무조건이 유연한가 봐요.


네, 대표님이 직원들 편의를 많이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오남매 중 막내인데, 형제들 모두가 결혼을 안 하고 엄마와 같이 살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막내인 제게 의지를 많이 하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는 등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해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탄력근무를 하게 해주셨어요. 덕분에 매주 화요일은 오전에 1시간만 일하고 쉴 수 있어서 좋아요.



네모연구소는 어떤 회사인가요?


인쇄, 디자인, 출판 서비스 전문 기업이에요. 단순히 인쇄만 하는 게 아니라 책이나 홍보물, 판촉물 등을 디자인해서 제작하기도 하는데, 주로 소셜벤처와 스타트업을 클라이언트로 보유하고 있어요. 저는 지난해 6월에 네모연구소에 입사해 경영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첫 직장부터 말씀드리려면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웃음) 맨 처음 입사한 회사는 선박 검사를 하는 사무실이었어요. 제가 조선과를 나왔거든요. 그때 대표님이 좀 독특하셔서, 저를 앉혀놓고 늘 선박에 대한 교육을 하셨어요. 그러던 중, 대표님이 조선소에 파견을 나가셔서 6개월간 혼자 사무실을 지키게 됐는데, 돌아오실 때가 되니 또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하더라고요. 당시 제가 스물세 살이었거든요. 어린 마음에 도망치듯 퇴사를 하고 여행사로 이직해서 2년 정도 일을 했죠.

그러다 해외 선교 단체인 ‘머시쉽(Mercy ships)’을 알게 됐고, 너무 참여하고 싶어서 과감히 지원했어요. 사실 저는 영어 쓰는 사람만 봐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영어에 두려움이 있던 사람인데 이상하게 머시쉽은 꼭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아는 언니에게 영작을 부탁해서 메일을 보냈어요. “나는 영어를 못 하는데, 봉사활동을 가도 괜찮나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를 가르쳐 줄 테니 오라는 답장을 받은 거예요! 마침 머시쉽에서 한국인 봉사자들을 선발해 ESL 교육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계획한 상태였다고 해요. 덕분에 저는 20대 초반을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냈어요.



영어를 싫어하는 사람이 해외 봉사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머시쉽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료됐나요?


머시쉽은 배를 병원선으로 개조해서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정박해 그곳 주민들을 치료하는 봉사 단체예요. 신앙 서적을 보다가 우연히 머시쉽 설립자가 쓴 책을 읽었는데 너무 멋지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타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운이 참 좋았죠. 당시 제가 여행사를 다니고 있어서 항공권이 50% 할인됐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청년 발런티어로 참여해 비자도 쉽게 나왔거든요. 회사에서 제가 제일 한가한 직원이라며 억지로 보내서 갔던 건데, 영사가 제 여권을 보고는 “너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봉사했어?” 하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10년짜리 관광비자를 발급해줬어요.(웃음) 저는 기독교인이라서,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죠.



완전히 낯선 세계에 뚝 떨어졌는데, 어떠셨어요?


1997년 9월에 미국 텍사스에 가서 3개월간 ESL 코스로 영어를 배웠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그러다 IMF가 터지면서 후원을 못 받아 고생을 좀 했죠. 머시쉽은 자원봉사자가 생활비를 자비로 부담하게 하고, 단체에 들어오는 후원금은 100% 사역에 쓰거든요. 제게 개인적으로 들어오던 후원이 끊겨서 생활비도 못 낼 상황이었는데, 미국에서 만난 한인들이 좋은 일 한다고 헌금을 해주셔서 그걸로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그 후 98년 3월에 중미로 가는 배를 타고 봉사활동을 했죠. 머시쉽에는 20여 개국에서 온 봉사자들이 있거든요. 여러 인종과 어울리며 다양한 영어 발음을 들었던 시간이었어요.(웃음)



"3개월간 ESL 교육을 받았다"고 간략히 말씀하셨지만, 사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두 친절해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제가 영어를 못하니까 아주 쉽고 천천히 말을 하고,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해서 계속 얘기를 해줬거든요. 또 ESL 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자진해서 저를 지도해주겠다고 하셔서 배를 타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 동안 꾸준히 영어를 배웠어요. 사람들이 재미있는 드라마가 할 땐 꼭 데려가서 같이 보여주고, 더듬더듬 이야기 해도 잘 들어줘서 짧은 시간에 많이 늘었죠. 모두 제게 쉬운 말로 설명을 해줬기 때문에, 사실 제 영어 실력은 어린이 수준이에요. 영어를 잘 못 하는 사람도 제가 하는 말은 다 들린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럼 한국에는 언제 다시 돌아오신 거예요?


제가 탔던 배가 1999년에 홍보차 한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그래서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 배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준비 작업을 했어요. 머시쉽을 홍보하기 위해 방송국에 보도자료 전송하고, 함께할 교회를 찾고 그런 일들을 4~5개월가량 마친 뒤, 완전히 배에서 내렸죠.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걸 아니까, 단체에서 한국에 온 김에 떠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머시쉽은 한 번 배를 타면 2년가량 돌아올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때 봉사활동을 그만뒀어요.



배에서 내리고 나서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직장을 구하러 다녔는데 IMF의 여파로 취업이 어렵더라고요. 닥치는대로 아무 일이나 했어요. 신용카드를 많이 발급할 때여서 카드 발급 업무도 해보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고요. 그후에 몇 군데 무역회사를 전전하다가 한 원단 수입회사에 취직했는데, 그곳에서 거의 모든 업무를 배웠어요.(웃음) 경리도 하고, 영업지원도 하고, 영업사원들이 영어를 못해서 서플라이어들과 커뮤니케이션도 제가 다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처음엔 월급도 밀릴 정도로 어려웠던 회사가 점점 잘 되더라고요. 그런데도 사장님이 연봉을 안 올려주시는 거예요. 결국 퇴사하고, 선박기자재 수출하는 회사로 이직해 해외영업 일을 했죠. 거기서도 4년 정도 고생하며 산전수전 다 겪고 사표를 냈어요.



정말 많은 일을 하셨네요.


저는 주로 직원이 10명 이내인 회사를 다녔어요. 그래서 작은 회사들이 가진 단점을 거의 다 겪었던 거 같아요.(웃음) 직원 대우가 안 좋은 건 비일비재하고요. 내부고발자가 있거나, 사적인 일을 부탁하고, 대체인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선박기자재 회사에 다닐 땐 하도 오래 앉아있다 보니 급성치질에 걸려서 수술을 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 출근해서 부산출장을 가고, 바이어와 서울 투어까지 했어요. 결국 한 달 뒤에 수술 부위가 덧나서 다시 꿰맸는데, 너무 아파서 회사에 못 들어가겠다고 전화했더니 부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오늘 중요한 계약 있는데... 그냥 나오면 안 될까?”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아져서 결국 퇴사했더니 그때부터는 취업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사회적으로 취업난이 심해졌고, 제 나이도 마흔이었거든요. 그때부터 계약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힘드셨겠네요. 그런 상황에 닥치면 과거를 원망하게 되잖아요. 경력 공백의 원인이었던 봉사활동이나, 소규모 기업에 입사한 선택들을 후회하진 않으셨어요?


아니요, 오히려 봉사활동은 너무 좋은 기억이었어요.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 가면 다리가 기형으로 태어나 발등으로 걷는 아이들이나, 종양이 생겨도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많거든요. 어떤 사람은 몸이 아예 기역자로 꺾여 있고, 화상으로 손가락이 다 붙어 있기도 해요. 또 여자들은 할례를 하기 때문에 생식기에서 진물과 악취가 나는 경우가 많죠. 그러데 이건 수술을 하면 다 괜찮아지거든요.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다가 머시십에서 수술받고 새 삶을 찾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정말 뜻깊었어요.

또 저는 엄마와 가족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주로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선호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다만 경력이 여러 분야로 흩어진 게 좀 아쉬워요. 간단한 업무 분야는 젊은 직원을 더 선호하고, 전문성을 살리기엔 제 능력이 부족했으니까요. 어쨌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7년에는 전산세무 2급, 전산회계 1급 자격증을 땄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증명할만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네모연구소에 취직하기 직전에는 머시쉽 한국사무소에 일하신 걸로 알아요.


취업을 준비하던 당시에 때마침 한국 머시쉽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단체가 사단법인으로 전환됐는데, 사회경험이 전무했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보니 경영 및 회계관리가 어려웠던 거예요. 2018년에 입사해서 그동안 제대로 정리가 안 됐던 것들을 제가 다 바로 잡았어요. 구멍난 돈 찾아 메우고, 입출금 내역 등을 엑셀파일로 정리하는 데만 한참 걸렸죠. 그런데 연봉이 최저임금 수준도 안 돼서, 애초에 입사하면서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나가겠다고 말을 한 상태였어요. 그 월급으로는 생활이 안 됐거든요. 그냥 봉사를 더 한다는 생각으로 1년 넘게 있었던 거예요.



그럼 네모연구소는 어떻게 입사하셨어요?


머시쉽에서 이직을 준비하던 중, 오렌지레터를 통해 위커넥트를 알게 돼 이력서를 등록했고, 네모연구소를 소개받았어요. 집과 거리가 멀어서 고민하다, 지원하고 면접을 봤는데 대표님께서 말씀을 잘 들어주시고 회사 분위기도 좋아 보이더라고요. 사실 면접 때 “집에서 먼 게 마음에 걸린다”고 솔직히 말했는데 최종합격을 해서 놀랐어요.(웃음)





네모연구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경영지원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어요. 주로 세금계산서 발행하고, 발주 들어온 책을 시스템에 출고 요청하는 등의 일이에요. 급여 지출, 명세서 발송 등의 업무도 있고요. 아무래도 비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월초, 월말에는 바빠요. 그외에는 매일 지출 내역 확인해 정리하는 등 루틴하게 돌아가죠. 네모연구소에서는 자체 기장을 하지 않다 보니 결제 내역 스토리를 찾기가 힘들어서 입금 건에 대해 일일이 메모를 다 해놓고 있어요.



이전 경력부터 지금까지 일해온 과정을 쭉 들어보니, 엄청 꼼꼼하신 것 같아요.


빠짐 없이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미수금이 생겼을 때 처리하기가 힘들거든요. 경영 지원, 재무회계 업무는 꼼꼼함이 필수예요. 그런데 네모연구소는 재무회계를 거의 다 세무사무소에 맡기고 있어요. 사실 매입, 매출 등을 점검해 기록하는 게 꽤 시간이 드는 일인데, 여기선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돼서 업무량이 적은 편이에요.



네모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게 뭔가요?


예전엔 몰랐던 프로그램을 많이 접하고 있어요. 요즘은 업무용 메신저로 ‘슬랙’을 쓰고, 사내 결제 시스템도 ‘닥스웨이브’를 사용하더라고요. ‘이제 이런 걸 쓰는 시대가 됐구나’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결재도 단순해요. 지출결의서를 작성하지 않고 메신저로 해당 내용을 전달하면 되거든요. 이제 대부분의 업무가 전산화되면서 일이 단출해진 것 같아요. 또 하나 신기한 건, 이메일 쓰는 형식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거예요. 예전엔 업무 진행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간결하게 해야 할 말만 딱 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항상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코멘트를 꼭 덧붙여요.(웃음) 덕분에 저도 요즘 이메일 쓰는 스타일이 많이 변했어요.



여러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얻은 업무적 강점도 있을 것 같아요.


그저 경험담이 많아질 뿐이에요.(웃음) 그런데 습득력은 남들보다 좀 빠른 편이에요. 혼자서 여러 업무를 다양하게 처리해 왔으니까요. 처음 해보는 일도 혼자 고민하며 알아보고 배우는 과정을 많이 거쳤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거리낌 없이 빨리 배워요. 덕분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되게 오래 다닌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네모연구소에서 일하며 힘든 부분은 없으세요?


회사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개인적인 마음의 변화가 좀 있어요. 예전엔 뭘 하든 자신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겁이 나요. 어릴 땐 몇십 장의 견적서 가격을 다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기억력도 전 같지 않고, 자꾸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생겨요. 이제 좀 내려 놓으려고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좀 실수해도 돼. 다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실수를 인정해야 그걸 수습할 방법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저희 대표님은 실수했다고 다그치는 분이 아닌데, 괜히 저 혼자 두려워서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젊은 직원들과 어울릴 때도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예전엔 회사에서 만난 사이라 해도 사적인 교류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자기 일만 확실하게 처리하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 분위기더라고요. 네모연구소 사무실도 항상 고요해요. 제가 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이 꼰대처럼 보이진 않을까 싶어서 신경 쓰고 있어요.(웃음)



위커넥트를 통해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자 하는 경력보유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내 경력을 살려서, 유연한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다는 게 위커넥트의 제일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또 취업했다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주는 게 참 좋더라고요. 경력에 공백이 있는 경우에는 막상 취업에 성공해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두렵기 마련이에요. 제 마음에 드는 회사를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도 저에게 만족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위커넥트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면 간접적으로 회사의 입장을 피드백 받을 수 있어서 마음이 안정 돼요. 무엇이 부족한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고,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자신감이 절로 생기거든요.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위커넥트에서 꼭 상담을 받아보세요. 본인에게 잘 맞는 일자리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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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다양한 매체에서 글이 중심이 된 콘텐츠를 제작했다. 독립잡지 <나이이즘>의 에디터로 참여했고, <채널예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은 워킹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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