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장 모아 단문 1
뇌의 작동 원리는 추론이다. 뇌는 장, 심장 등 내부 감각을 인지해 이건 통증, 이건 감정이라고 구분해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뇌의 잘못된 추론으로 신호를 잘못 파악해 아프다고 느끼는것이 만성 통증이다아파서 아픈게 아니라 뇌의 추론이 잘못됐다는 거다
뇌의 잘못된 추론 속에 있는 밤. 이 지긋지긋한 두통은 그가 떠나고 난 뒤부터 생긴 것이니 이별이라는 감정을 통증으로 추론한 뇌의 오작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추론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는 어디서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일까?
밤이면 더 심해지는 두통, 차라리 일어나서 일이나 하자고 앉는다. 수정해야 할 책상 위 기획서가 엄청 두껍다. 표지에 목차, 목표,기획 방향, 시장분석, 근데,,,, 그래서 뭘 하자는 거야? 논리도 맥락도 없는 기획서를 훑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내 통증이 잘못된 뇌의 추론에 의한 거라면? 이렇게 비논리적 추론을 일삼는데 나의 뇌가 쓰는 나의 기획서는 과연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어 생각이 꼬리를 문다 “논리적?”,,.
그는 논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인과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말들을 불쑥불쑥 물었다.
“가려고? 잠깐만 기다려봐,,,너 오면 주려고 내가 시간을 좀 남겨뒀어.. 가져갈래?”
그는 제법 맹랑하게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해 빈손을 뻗는다.
나는 헛웃음이 나온다.
“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
“이런 식이 뭔데?”
“사람 기 빨리게 하는 말장난...이제 이런 말장난은 그만 좀 하면 안 돼?
진지할 때는 좀 진지해지자! 우리 지금 심각하잖아.. 위태하잖아...”
“니체가 말했지. 심각함에는 신도 손을 뗀다. 인생 심각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나는”
그와 헤어지고 9개월이 지난 즈음 그의 누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가 일본여행 중 숙소를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CCTV에도 잡히지 않았고, 9개월어떤 흔적도, 카드사용 내역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전화기를 숙소에 두고 나간 것을 보면 실종이 아니고,,,어쩌면,,.이라고 누나는 말끝을 흐렸다.
나에게 전화를 망설였다는 누나는 혹시나,,,그가 일본에서 갈 곳이나 만날만한 사람을 아는지 묻기 위함이었다. 전화기 넘어 누나의 마음에서 슬픔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나의 어설픈 위로가 닿지 못할 것을 알기에 특별히 생각나는 바가 없다고 담담히 전화를 끊었다.
그는 두렵고,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전해야 할 때조차도 특유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떠난 적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늘 하얀 진실 같았고, 전하기 힘든 말을 옳기는 그의 움직임은 거대한 밀림에 사는 고릴라의 우아한 움직임처럼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곁에서 지켜본 나는 그를 ‘참, 하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얀 양파처럼,,,그러고 보니 양파 안엔 오직 양파만 있듯 한결같음도 꼭 양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실종’이라니,,,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야쿠시마섬 그 ‘시간의 숲’에서 그가 사라졌다니,,,
그는 야쿠시마 이야기를 가끔 했다. 산불조차 나지 않는 축축한 섬에서 살기 위해, 나무들이 스스로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 오래 견디는 법을 익히는 곳. 삼나무들이 5년에 30㎝씩밖에 자라지 않는 야쿠시마의 나무가 자라는 속도는 인간의 속도와 너무나 달라서 '부부 삼나무'라 불리는 어떤 삼나무는 가지와 가지가 맞닿기까지 500년이나 걸리는 곳. 7200년 된 삼나무가 사는 그곳을 ‘시간의 숲’이라고 부른다며,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헤어진 뒤 우리의 시간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 걸까?
과거에 두면 아름답던 시간들이 헤어진 다음에 꺼내 들면 끔찍한 시간들이 될 때가 있잖아
그렇다면, 그냥 과거에 두고 오는 게 맞는거겠지?.”
지금 이곳은 그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비가 내린다. 운동장 흙을 조용히 적셔 흙먼지 냄새가 피어오를 정도, 흙이 왕관 모양으로 튀지 않는 딱 그 정도, 하늘에서 내리꽂힌 비가 정수리에 토독 닿는 정도의 그런 비가 내린다.
그가 사라졌다는 야쿠시마...
시간의 숲인 야쿠시마는 그가 말한 우리의 시간을 두고 오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일본 야쿠시마에는 매일 비가 내린다고 한다. 눈을 감고 상상했다. 거대한 숲속 한가운데 7200년을 살아낸 조몬스키 앞에 아주 작은 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그를.
그는 어쩌면 7200년 된 삼나무 앞에 서서 영원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절망하는 슬픔, 아픔, 사랑,,, 고작 10년, 아니 고작 2, 3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스러지는 인간적인 사랑과 맹세 이런 것들이 만드는 상처와 기억을 넘어설 영원한 사랑을 찾고자 시간의 숲으로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두통이 뇌의 잘못된 추론에 의한 통증이듯이, 그의 여행이 잘못된 추론에 의한 ‘실종’이 된 것은 아닐까? 인과와 논리에 벗어나 있던 그만의 방식의 추론에 의하면 그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의 실종이 고작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의 잘못된 추론이라고 비웃으며 7200년 된 조몬스키의 시간을 견디고 비논리적인 시간을 들고 나타날 그를 나는 기다린다.
“너와의 시간을 숨겨두고 왔어. 그곳에서 여기로 가져오면 아름다움이 기억되지 않을 것 같아서. 아름다운 시간의 숲에, 여기 아닌 그곳에 꼭꼭 숨겨뒀어.
찾지 못할 곳에 두고 오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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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10문장으로 단문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건 정말 무리수였습니다. ㅎㅎㅎ
글이 어떻든지 숙제를 마치는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래도 쓰레기 같은 초고지만 호기로운 이벤트로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처음 써 봤습니다.
이 글의 초석이 된 10문장 선정에 도움을 주신 Box자유인, 강승원, 김제호, 도원세상, 한결, 봄날, 사각사각,
대장장이휴, 이종원, 청년클레어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