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가 신께 바치는 성스러운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부 설명을 들은 후 사전에 구입한 내부 입장 티켓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입장을 하였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 짐 검사와 티켓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철저한 검사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이런 아름다운 성당이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로 파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철저한 검사를 통해서라도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외부 투어를 다닐 때 투어팀 중에서 혼자 온 사람은 교직을 쉬다가 복직을 앞두고 있다는 젊은 여교사 한 명, 그리고 방송국 프로그램이 돌연 폐지되는 바람에 강제로 쉬게 되어 여행을 떠나온 방송국 작가, 나 이렇게 세 명이었다. 그래서 투어가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고 오후에 성당의 내부도 같이 들어가기로 했는데 젊은 여교사와 나는 내부 투어 티켓을 사전에 예매해 왔는데 갑자기 떠나온 작가는 티켓을 미처 구입하지 못했고 당일에 구입하고자 하니 이미 매진된 상황이었다.
겨울이 바르셀로나 여행의 비수기라고 하는 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 티켓이 이미 매진된 것을 보면 바르셀로나에 온 여행객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성당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젊은 여교사와 나, 둘이서만 성당 내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기존에 보았던 성당들은 보통 성당 내부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된 성화나 금으로 장식한 성체 등이 장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성당은 성당 한가운데 외로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저 온전히 초록빛, 그리고 다른 한쪽 면은 주황색 계열의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둘러보고 있었는데도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조용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종교적으로 아무런 이야기도, 설명도, 강요도 없는데 아름다운 빛 속에 서 있으니 이곳은 왠지 성스러운 신의 은총이 머무는 곳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관광객들도 조용히, 경건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모두 다 마치 미사에 참석한 것처럼 소곤소곤 대화하거나 조용히 묵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이지 이 성당은 요즘 MZ들의 표현을 빌자면 가우디가 ‘찢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성당을 건축하면서 성당 지하에서 홀로 거주하면서 오로지 건축만을 위해 헌신하였던 가우디가 미사를 다녀오다가 길거리에서 마차에 치어 노숙자 취급을 받고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쓸쓸히 죽어간 그의 삶과 어우러져 정말 이 성당은 천재 가우디가 온전히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건축물이라는 생각에 나 역시도 한참이나 숙연하게 성당에 앉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일어나 성당을 돌아보니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가이드가 이야기해 준 우리나라 김대건 신부의 이니셜도 찾을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확인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런 아름다운 성당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신부의 이니셜,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특히 주기도문에 한국어로 적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문구는 정말 우리나라 사람에게 잘 맞는 절묘한 문구라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민족이 먹는 것, 밥에 얼마나 진심인 민족인가? 우리 민족의 특성에 맞게 일용할 양식이라는 내용이 한글로 적힌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내부를 다 둘러보고 성당 뒤편으로 가려는데 출구를 몰라서 입구 쪽으로 와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출구는 기념품점 쪽으로 내려가라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기념품점을 구경하고 작은 소품들도 구입하고 출구 쪽으로 나왔는데 그쪽은 성당 뒤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당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원하지 않았는데 성당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나는 밖에서 둘러보았을 때 성당 뒤편의 조각상에 마음을 빼앗겨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고 그 선생님은 가우디가 성당의 일꾼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지었다는 학교를 꼭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다 보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어떡하지? 우리 둘은 밖에서 잠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