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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에 헤네랄리페 정원에서>

by 김영숙

스페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그라나다를 찾는 이유는 오로지 알함브라를 한번 보겠다는 생각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라나다는 유난히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데 나 역시 스페인 여러 도시 중 그라나다는 꼭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라나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나의 로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중,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타레가의 기타곡에서 시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레가는 스페인의 클래식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인데 1896년 그의 제자이자 유부녀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거부당하고 실의에 빠져 스페인을 여행하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접하게 되고 이 궁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무위키 참조)


타레가가 경험한 실연의 아픔이 절절히 아름다운 기타 연주에 스며서인지 트레몰로 주법으로 애절하게 연주되던 기타곡은 청소년기 감성적으로 민감하던 시기에 나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막연히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꼭 알람브라 궁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알함브라는 궁전이 아닌 성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다.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붉은 철이 함유된 흙으로 벽을 지어 성벽이 붉게 보인다고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성은 해발 740m의 구릉에 있는 성으로 평원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 지어졌으며 처음 건설할 때는 군사 요새로 지어졌으나 후에 이슬람 왕실의 거처로 된 곳이며 우리가 궁전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아마도 성 안의 나스리 궁전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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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여왕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알함브라는 나스르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고 이베리아 무슬림 최후의 군주인 무하마드 12세인 보압딜의 지배하에 있었다.


알함브라 성의 나스리 궁전은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으로 이슬람 양식 특유의 아라비아 문양 타일과 벌집무늬 석회 세공의 아름다움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탄과 탄성을 자아내는 장소이다.


또한 왕궁의 정원은 한겨울인데도 초록의 나무와 이슬람식 분수가 솟아 올라와 햇빛과 어우러지니 그 아름다움이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이었다. 정원 벤치에 앉아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그라나다를 울면서 떠나갔다는 보압딜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는 그라나다를 이사벨에게 빼앗기고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가면서 “그라나다를 잃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알람브라 궁전을 다시 못 본다니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보압딜이 이 알함브라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는지 그의 유일한 항복 조건에 알함브라를 파괴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것을 보면 알함브라 성의 아름다움이 누구에게나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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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의 즐거움은 내 맘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보고 난 이후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질릴 만큼 눈에 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원 벤치에 앉아 분수의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헤네랄리페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환갑(還甲)은 다른 말로 회갑(回甲)이라고도 하며 60세 생일을 축하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로 60년마다 같은 이름을 가진 해가 돌아오는, 즉 육십갑자가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전에 수명이 길지 않던 시절에는 60세까지 살아있는 노인의 수가 많지 않아서 마을에서 60세가 되면 잔치를 열어 축하하곤 했던 풍습에서 비롯된 풍습일 것이다.


스페인 여행을 하는 지금 나의 나이는 60이 되었고 육십 년의 세월을 넘겨 이곳 헤네랄리페 정원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고 60년의 세월을 지나 이 아름다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였다. 이 알함브라는 이슬람 패전의 슬픔과 가톨릭의 승리의 기쁨이 교차되었던 곳이나 이제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나이 듦의 행복을 생각해 보는 것이니 지금이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가! 헤네랄리페 정원에서 맞이하는 나의 60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생각될 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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