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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대 언니 Sep 11. 2019

일터 속 내 공간에 대한 사유

나만의 방을  잃고 나니 보이는 것들

출퇴근 하는 인생들, 아니 미생 들에게 일터 속 나의 공간은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닭장 같이 나란히 쭉 늘어선 책상 속 자리에서 시작한 나의 회사 생활은 사반세기가 지났건만 달라진게 없다.


한때 낮은 담장 너머로 마주보고 일하는 동료의 트림에 내 앞머리가 휘날리고,  유난히 장이 안좋았던 선배가 점심시간 후에 살포하던 독성 가스를 마시며,  옆 뒤로 오가는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터넷 쇼핑을 하기도 했고

어느 세월에 내 방을 가져볼까? 살아서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가? 한숨을 짓기도 했다.


그런 내가 이차저차 우여곡절과 고분분투 끝에 임원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면서 처음으로 파티션 안의 내 방이 생겼다.  기뻤다. 작지만 자랑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회의를 간단히 할 수 있는 탁자와 보조의자들로  팀원을 불러 모아 목청 높여 왜  이번달 매출이 중요한지 강조하기도 했고, 잠시 의자를 돌려 놓고 앉아  새벽 출근의 피로감을 해소하려 눈을 붙이기도 했다.


첫 직장을 떠나, 새로운 일터을 옮기고는 파티션이 아닌 완전한 내방이 생겼다.

유리벽으로 바깥공간을 차단하는 방안에서

잦은 해외 본사와의 컨퍼런스 콜을 큰 소리로 할 수 도 있고

문을 닫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우면서 일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방을 오래 지키지 못했다

조직 개편으로 팀도 잃고 내 방도 잃었다.

다시 닭장 근무시절로 되돌아 가는 도돌이표를 찍는 듯한 경험이었다.


안정된 우리에서 세렝게티 벌판으로 쫓겨 나온 사슴처럼 사방이 오픈된 공간은 맹수의 눈이라도 되어 나를 지켜보는 듯하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겠다.  대형 모니터는 누구든 볼 수 있으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도 쉽게 볼수 있어 나의 작업과 지식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듯하다.

주변 사람들이 팀원을 잃고 자리까지 나앉은 나를 안스럽게 보는 듯 자격지심 조차 생긴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없는 외근을 만들어 밖으로 내돈다.

자리를 바꾼 후 반년이 지나도록 나는 부적응자처럼 내 자리를 내것으로 여기지 못했다.


6개월이란 시간이 흐르자

나도 이제 이 자리에 익숙해져 간다.

게다가 방 밖에서는, 방 안에서 듣지 못하던 정보가 있고 분위기의 흐름이 보였다.

주변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었다.

나의 두번째 직장인 이 회사의 첫 스타트를 방밖에서 했더라면

나는 팀원들을 잃지 않았을지 모른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스타트업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매니저들에게 별도 공간을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CEO인 자신조차도 오픈스페이스에서 근무한다.

4년전 저커버그를 실제로 회의석상과 이어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영화에서 제시 아이젠버그가 분했던 저커버그를 생각하고 20대 창업자 특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예상했으나 실제의 저커버그는 정장을 입은, 예의바른 그러면서도 남의 말을 잘 드는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입꼬리에 미소를 잃지 않고 모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으며 자세조차 20대의 자세라기보다는 지혜로운 60대의 모습처럼 여유와 배려가 배어있었다.

그를 보니, 그 아이디어의 원천은 말하고 표현하는 데서 나오는게 아니라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방안에서 나는 말하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말을 전하기 위해 팀원들을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방밖에서 나는 듣기에 가까워 진다.

방밖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짐을 느낀다.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그 일을 더 잘 이해햐게 만든다.


이제 내 자리가 조금은 편해진다.

때로는 잃어가면서 자유로움을 얻는다.

잃어가면서 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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