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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May 31. 2019

남편의 늦은 귀가, 아내의 혼자 여행

결혼의 규칙은 부부의 수만큼 필요하다

얼마 전,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며 좀 늦을 것 같다고 연락해 왔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고양이들과 한가하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방금 톡 했는데, 하고 휴대폰을 보니 웬일로 시아버지 전화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약주 한잔 하시고 며느리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하셨단다. 좀처럼 내게 전화한 적이 없으신 분이라 무슨 일 있나 하고 긴장했던 마음이 풀려 나도 웃었다. 몇 마디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일단 남편의 부재를 전했다. 


“남편은 오늘 친구들 만나러 나가서 좀 늦는대요.” 

“그래? 아직도 안 들어왔어?”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재미있나 봐요.” 

“남자가 술 먹고 좀 늦게 들어와도 바가지 긁지 마라, 그럴수록 잘해줘야 돼.” 


시아버지는 뒤끝 없고 호쾌하신 분인데, 꼭 예기치 못한 순간에 놀랄 만큼 가부장적인 발언을 내뱉곤 하신다.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바가지 긁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럴수록 잘해줘야 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집에서 아내가 상냥하게 비위를 맞춰야 남편이 기도 살고 밖으로 나돌지도 않는 법이다, 그런 부연 설명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남편의 늦은 귀가, 화내야 하나?


“아버님, 저희는 ‘서로’ 귀가 시간에 별로 신경 안 써요.” 


내가 솔직하게 답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우리도 결혼 초에는 각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갈 때 자기도 모르게 서로의 눈치를 봤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화가 난 배우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머릿속에 익숙한 결혼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사실 한쪽이 좋아하는 걸 다른 한쪽이 이해할 수 없으면 그 차이가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연애 때부터 서로의 술자리나 귀가 시간 때문에 다툰 기억은 거의 없다. 남편이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게 싫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결혼 초에 혼자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가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면 나는 기분이 나쁜가?


심심하고 외로울 때는 있지만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물론 공동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만큼 그 횟수가 잦거나 서로를 의심할 만한 여지가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우린 공동 육아할 아이도 없고 남편은 전날 술을 많이 먹었어도 아침에 잊지 않고 고양이 밥을 챙겨 주고 출근했다. 밤중에 내가 전화를 자주 걸지도 않지만, 그가 안 받거나 피하는 경우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술자리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종종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음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우리의 늦은 귀가는 오히려 주변에서 더 신경을 썼다. 결혼 후 내가 술자리에 남아 있으면 몇몇 사람들은 '오늘 술 먹는 거 허락 받았어?'라든가, '남편은 괜찮대?'라고 확인하며 '배려해' 주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오묘해졌다.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결혼 후 오히려 온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생각했는데 나의 보호자가 부모님에서 남편으로 옮겨간 것뿐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한편으론 남편도 종종 '결혼한 남자가 이 시간까지 술자리에 남아 있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지도 궁금했다. 


특히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면, 내가 만난 택시기사님들의 절반 이상이 나에게 '혼자 사는지' 물어보고, 남편과 산다고 하면 '결혼한 여자가 이렇게 늦게 들어가면 어떡하느냐'고 훈계했다. 내가 유독 그런 기사님들을 많이 만났을 뿐인 걸까? 이제 웬만하면 모든 질문에 최대한 거짓말을 한다. 경험상, 그냥 부모님과 함께 사는 대학생 내지 직장인인 척하는 게 제일 무난하다. (애초에 사적인 질문을 안 해주시면 최고다.) 


우리는 양해와 동의가 필요할지언정 허락이 필요한 사이는 아니었다. '결혼했으니 이제 유부남, 유부녀니까'라는 전제만으로 우리가 결혼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서로의 자유를 침해할 필요는 없었다. 한 사람이 하룻밤 정도 집을 비운다 해서 현재의 공동생활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아내 혼자 가는 여행 괜찮을까 


결혼 전에 혼자서 밥을 먹는 것도, 혼자 여행을 가는 것도 나에게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남편을 만난 뒤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결혼까지 했지만, 그게 내가 더 이상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작년 겨울에는 혼자서 훗카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도 없고 고양이도 없는 혼자만의 며칠을 보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남편은 나만큼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고, 나는 프리랜서라 직장인인 그에 비해 시간이 자유롭다. 비행기 값이 싼 평일을 이용해 짧은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나를 그는 흔쾌히 이해해줬다. 


내심 잘못이라도 하는 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나 역시 ‘결혼했는데 이래도 되나?’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도덕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오려 노력한 나인데, 혼자 여행을 한다는 사실은 왠지 ‘규율 위반’ 혹은 ‘일탈’ 같은 빨간불을 반짝 켜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동의 생활비를 남편이 개인의 일로 사용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었는데, 내가 혼자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주저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도 역시나 ‘남편은 괜찮대?’를 물었다. 배우자의 ‘따로 여행’을 허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기적으로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결혼 전부터 남편과 따로 술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건 은연중에 ‘금기’인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친구들과 우리끼리 휴일을 보낼 때면 ‘결혼 전에 이렇게 실컷 놀자’고 다짐하곤 했던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결혼 후에는 할 수 없다’는 전제에 자연스럽게 동의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면 어디 외국으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또 우리가 노는 시간에 낯선 이성과의 접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미래의 남편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당연히 ‘결혼하면 못 하니까’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느끼는 결혼의 제약 중에서도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언제부터 내 안에 쌓여왔는지 모를 내면적인 압박이었다. 외부에서 오는 며느리에 대한 제약은 눈에 또렷이 보이는 것이기에 하나씩 걷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결혼한 여자’라는 수식어에 잠재되어 있는 은연중의 제약은 나도 모르게 나를 잠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도 괜찮은데, 왜 결혼했을까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각날 때마다 남편과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을 하나씩 질문하며 우리만의 규칙을 정해 나갔다. 회식이나 술자리, 여행은 괜찮지만 연락이 끊기는 것은 싫다. 귀가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지만 집안일이나 서로의 관계에 소홀해지는 느낌이 들 만큼 잦은 것은 곤란하다. 


가끔은 ‘결혼했으니 당연히’라는 수식어를 붙여 관성적으로 화를 냈다가, 차분히 생각해 보면 화가 나지도 않는데 싸움을 하는 이상한 상황도 있었다.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실 결혼의 규칙은 부부마다 달라야 하는 것이었다. 


결혼에 대한 내 의견을 표출할 때마다 결혼했으면 서로 맞추고, 참고, 견뎌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수없이 들었다.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각자의 자유를 포기할 줄도 알고, 싫은 것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결혼했으면 마땅히 해야 할 것, 마땅히 참아야 할 것들을 견디지도 않을 거면서 우리 부부는 왜 결혼했을까? 


분명한 건, 우린 여전히 ‘함께’인 동시에 ‘각자’이고, 결혼이라는 안전한 수갑으로 서로를 속박하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려고, 더 안전한 자유를 누리려고 결혼했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세상이 일괄적으로 만들어 낸 결혼이라는 틀에 우리를 가두고,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어, 기성품 같은 ‘유부남, 유부녀의 삶’을 누리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다. 


요즘 <스페인 하숙>을 보면서 혼자 그 기나긴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할 수 있을까? 일단 남편의 취향에는 썩 내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둘째로 남편을 두고 가는 건 아내로서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양심의 가책이 밀려든다. 그러다가 나는 또 고개를 저으며 가능성을 열어본다. 그는 혼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고, 나 역시 그렇기에 용기를 낸다면 못할 것도 아니리라고.  


나는 여전히 자유로운 혼자의 삶이 좋다. 그리고 그 자유를 그와 함께 누리는 것은 더 좋다. 혼자가 지루해진 내가 무심코 손을 내밀면 그는 항상 그곳에 있다. 미리 시간을 맞출 필요도, 서로를 파트너로 삼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인 동시에 함께이기 위해서 결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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