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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Dec 04. 2019

시큰둥한 유기묘를 입양했다

우리는 묘연일까 

굽이굽이 늘어진 시골길에는 눈에 띄는 건물도 하나 없었다. 근처에 있다는 중국집 이름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채 주소 없는 보호소를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찾아가는 보호소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는 주소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보호소 주소가 알려지면 일부러 그곳까지 찾아와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논두렁을 끼고 있는 작은 비포장도로에 간신히 접어들어 보호소에 들어섰더니 제일 먼저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매번 낯선 사람을 맞이해야 하는 아이들은 특별히 낯을 가리지도 않고 손님에게 시선을 모았다. 


우리 부부가 일산에 있는 이 주소 없는 보호소까지 온 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한 고양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남편이 그 고양이를 찾아냈다. 유기동물 보호소에 있는 크림색 고양이 입양 공고가 올라온 것은 이미 5개월 전이었지만, 남편은 혹시나 아직 입양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보호소에 연락을 취했다. 그 고양이는 아직 누구에게도 가지 않고 보호소에 남아 있었다. 입양 공고가 올라온 지 5개월이 지난 고양이에게 어쩐지 신경이 쓰이는 그 마음은 묘연이었을까? 


우리는 이미 두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나는 셋째 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에 사뭇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결국 ‘일단 한 번 만나 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마지못한 척 찬성했다. 일단 마음속에 들어온 고양이를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길고양이 출신의 첫째 제이를 입양할 때부터 느낀 바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남편이 유기동물 보호소의 고양이를 선뜻 입양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도 나를 내심 놀라게 했다. 셋째를 들인다 하더라도 예쁜 아기 품종묘를 키우고 싶다고 했던 남편이 서슴없이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는 성묘를 입양하자고 나서다니, 그 변화가 신기하고 고마웠다. 


보호소에는 강아지의 수가 월등히 많았고, 몇 개의 견사를 지나 깊숙이 들어가자 자그마한 방 하나를 묘사로 쓰고 있었다. 캣타워와 모래 화장실이 빼곡하게 놓인 묘사에서 지내고 있는 고양이는 10여 마리 정도였다. 사람이 들어오면 일단 모여드는 개들과 달리 고양이들의 반응은 극명히 갈린다. 꼬리를 높게 치켜들고 다가와 인사를 하는 사교성 좋은 ‘개냥이’가 있는 반면, 낯선 사람은 일단 경계하며 꽁꽁 숨어 버리는 ‘은둔형’ 고양이들도 있다. 


물론 타고 난 성격도 있겠지만 대개는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따른 반응일 것이다. 특히 학대를 당한 적 있는 고양이들은 특정한 성별의 사람을 유독 무서워하기도 하고, 길다란 막대기처럼 생긴 물건만 보면 경계심을 드러내며 하악질을 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상처가 많아 공격적인 아이들일수록 입양의 기회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상처는 또 다른 사람이 긴 시간과 깊은 사랑을 들여 치유해줄 수 있으나, 더 쉽게 가족을 만나는 건 언제나 작고 어리고 해맑은 고양이들이다. 


보호소의 고양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가만히 몸을 낮추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자 사진으로만 봤던 그 크림색 고양이가 있었다. 모색 때문에 붙은 이름이 분명한 ‘크림이’는 어릴 때 구조되어 벌써 몇 년 동안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몇 년 동안 봉사자들이 오면 제일 먼저 문 앞으로 달려 나와 반겨주고, 빗질을 하든 손톱을 깎든 싫은 소리 한 번 않고 몸을 맡기는 순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은 낯선 사람들이 온 탓인지 의자 밑으로 들어가 좀처럼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언뜻 봤을 때 느낌으로는 예쁜 얼굴이라기보다 조금 억울해 보이고 퉁명스러운 얼굴이었다. 구내염 치료를 했다고 하더니 한쪽 이빨은 거의 다 빠져 있었고, 살이 찐 건지 털이 찐 건지 모를 큰 덩치의 고양이였다. 크림이는 우리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무관심한 표정을 한 채 살금 눈을 감고 잠이나 잘 태세였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셋째 입양에 대한 확신이 없어, 첫 인상이 썩 좋지 않은 이 고양이가 먼저 나에게 확신을 주길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정말 묘연일까? 하는 마지막 의구심은 고양이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스르르 녹아 사라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마지못한 척 너를 맞이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예상했던, 혹은 기대했던 교감은 없었다. 쥐가 날 정도로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눈 한 번이라도 마주치려고 들여다봤지만 결국 이날은 별다른 인사 없이 얼굴만 슬쩍 보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별 소득 없는 이날의 만남은 오히려 다른 종류의 끌림으로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크림색 털에 파란 눈, 집에서 예쁨 받으면서 지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예뻐질 게 분명하겠지……. 무엇보다 왠지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보호소에 들어오고 성묘가 된 이후에 한 번도 가정에서 지내본 적 없는 고양이인 것이다. 보호소가 당연히 내 집이라는 듯, 새로운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 시큰둥한 얼굴이 오히려 자꾸 눈에 밟혔다. 애초에 나는 처음부터 이 고양이가 우리가 가족이 되어야 할 그럴 듯한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보호소에서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그곳이 집이 될 수는 없다. 봉사자들이 있지만 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유기동물들은 이들이 주는 사랑을 다른 개, 고양이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 보호소 묘사에는 자기만 바라봐줄 집사가 필요하다는 듯 사람을 보자 무작정 몸을 비비며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자기는 보호소도 괜찮다는 듯 눈을 껌뻑이고 있던 그 크림색 고양이는 또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보호소에 머물게 될까?


이미 마음은 결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땠어, 우리 그 아이랑 괜찮을 것 같아? 남편에게 묻자 그도 잠깐의 만남이 마음에 여운으로 남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우리는 저녁을 먹다 말고 보호소에 크림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서둘러 우리 집 셋째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오기도 전에 연한 노란빛 털을 보고 벌써 ‘달’이라는 이름을 지어두었다. 그 은은한 빛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스며들길 바라면서. 





브런치에 자주 들어오고 있으면서도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어요. 언젠가 기록해두고 싶어 준비해 두었던 달이 이야기부터 다 잊기 전에 주섬주섬 올려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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