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고양이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한 다음 날,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보호소에 들어가 어제 본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고 나왔다. 묘사 안에서 이동장 문을 열어두자 제 발로 그 안에 들어가기도 했던 이 순한 고양이는 차에 타는 순간 큰 소리로 냐아앙, 냐아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보호소에서도 접종이나 치료 때문에 종종 병원에 갈 일이 있긴 하지만, 차를 타고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더구나 생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랑.
고양이 입장에서도 4년을 넘게 지낸 보호소를 떠나는 것이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 우리 차에 낯선 고양이가 타 있는 상황에 상기되어 허둥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해야 했다. 이미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에, 또 그중 한 마리가 암 치료를 겪은 바 있기에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와 닿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레기보다는 어쩐지 묵직한 이 마음이 그런 걱정 탓인지, 실제로 이 큼지막한 고양이가 묵직한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
길고양이를 구조하거나 보호소의 고양이를 입양할 경우 대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동물병원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특히 집에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면 혹 전염되는 질병이 있지 않은지 여부도 체크해야 한다. 전염성 질병이 아니더라도 사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가 육안으로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특히 유기동물의 경우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육안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수준에서 입양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막상 병원에 데려가 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펫샵과 보호소의 차이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유기동물 입양도 마냥 ‘공짜’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애초에 동물을 입양하는 것 자체가 당장의 분양비, 책임비 이후의 지속적인 경제적인 지출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작고 귀엽기만 한 동물을 입양한다 해도 그것은 이 동물이 평생 살면서 걸릴 수도 있는 질병과 또 필연적인 노화 과정에서 오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로 약속하는 일이다. 꼭 유기동물이 아니더라도 모든 반려동물이 마찬가지다. 물론 그럼에도 달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차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보통 집고양이는 1년 넘게 목욕을 안 해도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 고양이는 아무래도 보호소에 있다 보니 스스로 그루밍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이렇게 냄새가 나는 걸까? 환경 변화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는 고양이의 특성상 우리 집에 와서 며칠 동안은 목욕을 보류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 냄새면 목욕을 안 하고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일단 병원에 도착해 달이의 이름을 접수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병원에서 보호자의 정보와 함께 고양이의 이름을 적어내는 순간부터 이 생명을 입양했단 사실이 실감나곤 한다. 이렇게 공증의 힘(?)이 크다. 내가 이 고양이의 가족이 되었다고, 서류상으로 못 박는 느낌이랄까?
지금 막 보호소에서 나온 고양이라는 설명을 들은 수의사 선생님은 달이의 귀 진드기 여부, 심장 청진 상태, 또 비만도(……) 등을 하나씩 살피기도 전에 이빨만 슬쩍 들춰보고는 단박에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여기 보이시죠?”
봐도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입양할 때 달이가 이전에 구내염 치료를 하느라 상당 부분 발치를 진행했다는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전발치가 아니었는지 생각보다는 이빨이 좀 남아 있었다. 속으로 이빨 개수를 헤아리고 있는데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구내염이 아주 심한 상태예요.”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확실히 남아 있는 이빨과 잇몸의 상태가 매끄럽지 않은 게 어디가 아프긴 아파 보였다. 다 나은 줄 알았던 구내염이 아직도 심각하게 진행 중이었던 모양이다. 구내염은 보통 전발치를 통해 완치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한다. 발치를 해서 낫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구내염은 안 나아요. 평생 약 먹이셔야 돼요.”
“평생이요?”
아직 우리 집에 올린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고양이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몸이라니. 게다가 구내염은 스테로이드를 먹여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하는데, 용량이 너무 적어도 효과가 없고 너무 많아도 몸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까다롭게 병원을 드나들어야 할 미래가 훤히 보였다. ‘헉, 하필……’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집에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아픈 고양이가 있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몸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과 기력을 내어 돌봐야 하고, 더구나 수시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인 것이다. 수의사 선생님이 애매하게 덧붙이셨다.
“건강한 고양이를 데려오지 그러셨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그러게요, 라고 대꾸하긴 했지만 나는 하악질 한번 하지 않고 그저 구석으로 몸을 웅크리기만 하는 순하고 커다란 고양이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이런 말을 듣게 한 것이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사실 구내염이면 어쨌든 죽을병은 아니었다. 암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두어 번 넘긴 첫째 고양이 제이와의 경험 덕분인지, 나도 웬만한 질병에는 꽤 초연해진 것 같았다. 아픈 것이 이 고양이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된 거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는가. 건강한 고양이를 데려오는 게 나았다면, 그럼 건강하지 않은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쓸데없이 결의에 찬 의문도 삐죽 고개를 들었다.
보호소에 있었으면 구내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이 고양이에게 이전보다 나은 삶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박애주의자는 아니지만, 내가 꾸려나가는 작은 세계에서 이 작은 생명 하나가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일인지도 몰랐다. 날 간택해온 고양이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나 역시 그런 묘연을 경험했던 바 있지만, 사실 내가 굳이 개입하여 선택한 달이와의 첫 만남은 그보다는 다소 무던한 느낌이었다. 나는 너를 내 세계로 기꺼이 들여놓을 테니, 이 시큰둥한 얼굴의 고양이가 조금만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그 정도의 마음.
첫째 고양이 제이의 암 치료기는 책 <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에 담겨 있어요 :-)
하지만 책 표지에 있는 것은 (귀여워서 선정된) 달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