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Feb 11. 2020

고양이의 침과 엉덩이를 닦아주는 집사의 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이런 일이었다

보호소에서 4년을 넘게 지냈다는 달이는 입가에서 자꾸 침이 흘렀다. 구내염 때문에 절반 넘는 치아를 발치했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구내염이 진행 중이었다. 병원에서 일단 2주치의 약을 처방받아 왔다. 어차피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기 때문에 경과를 지켜보면서 더 센 약을 쓸 건지, 약하게 쓸 건지를 조절하는 식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고양이에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이는 건 어렵다기보다 귀찮은 일이다. 고양이는 자율배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료는 틈틈이 챙겨주면 되지만, 약은 시간에 맞춰 먹여야 하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고 그 시간에는 집을 비우기도 어렵다.


게다가 약을 자주 먹어 도가 튼 고양이들은 알약을 먹은 척하며 입안에 숨겨놨다가 잠시 후에 몰래 퉤, 하고 뱉기도 한다. 예민한 고양이에게 약을 먹일 땐 손가락 하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꼭 피를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도 힘들겠지만,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매번 도망가는 걸 붙잡아 약을 먹이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그래도 달이는 워낙 성격이 무던한 순둥이라서 약을 먹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약이 조금만 약하거나 먹는 간격이 조금만 길어진다 싶으면 달이의 입 주변은 침이 질질 흘러 털이 온통 갈색으로 변해 버렸다. 동물용 물티슈를 사서 틈틈이 얼굴을 닦아주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 버려서 침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닦아도 돌아서면 또 입 주변의 예쁜 노란색 털이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설사였다. 고양이들은 보통 설사를 하더라도 자기 몸은 알아서 깔끔하게 관리하기 마련인데, 달이는 그루밍에 몹시 게을렀다. 엉덩이에 항상 지저분한 찌꺼기를 묻히고 다녔다. 집에서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 싶어 둘러보면 달이 엉덩이에서 나는 냄새였다. 수시로 엉덩이를 닦아줘야 했고, 이미 굳어서 잘 닦이지 않으면 엉덩이 쪽만 살짝 물을 묻혀서 목욕을 했다. 


강아지는 산책을 하면 발도 닦아줘야 하고, 주기적으로 목욕도 해주어야 해서 비교적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자기 몸은 스스로 챙기는 동물이다. 하지만 어딘가 아픈 동물은 다르다. 원래 키우던 두 마리를 돌보는 것보다 셋째로 들어온 달이 한 마리에게 훨씬 더 손이 많이 갔다. 수시로 지나가는 달이를 붙잡아 침과 엉덩이를 닦아줘야 하는 것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다.



나도 고양이를 키워볼까, 생각할 때 고양이에게 약 먹이는 방법까지 찾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귀엽고 건강하게만 자라면 좋겠지만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변수의 연속이다. 사람도 종종 감기에 걸리듯 고양이도 때때로 예상치 못한 질병을 앓는다. 쉽게 낫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치료 기간과 비싼 병원비를 동반하기도 한다. 큰 병이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나의 첫 번째 고양이 제이는 반년 동안 암 치료를 하느라 매주 병원을 오갔다. 주말에 다른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고, 한 달 월급이 고스란히 병원비로 들어갔다. 반려동물을 그냥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귀여운 장난감 정도로 여긴다면 절대 이 과정을 버텨낼 수 없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키우기 쉽다던데'라는 마음으로 키우는 것도 권하고 싶지 않다. 개든 고양이든 결국은 사람의 정신적 에너지, 수시로 생기는 잦은 일거리, 경제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종종 동물병원에 가면 그곳에 상주하고 있는 개나 고양이가 있는데, 치료를 포기한 보호자가 버리고 가서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번은 큰 병이 아닌데도 보호자가 그냥 '안락사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차마 그럴 수 없어 자신이 키우게 됐다는 수의사 선생님을 본 적도 있다. 그 고양이에게도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을까.


살아 있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병들거나 혹은 늙는다.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행복한 시간뿐 아니라 불편하고 힘든 시간까지를 감당하는 일이다.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데에는 아픈 가족을 돌보듯 늘 상태를 살피며 간호하는 시간이 포함된다. 나는 이제 막 입양해온 달이를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달이가 이제 내 가족이 됐기 때문에 묵묵한 마음으로 약을 먹이고 침을 닦아주었다. 달이는 약을 먹기 싫어서 도망가다가도 막상 먹고 나면 예쁜 파란 눈을 끔벅거리며 철퍼덕 누워 버리곤 했다. 


다행히 유산균을 꾸준히 먹이고 우리 집에 적응해가면서 달이의 설사는 시간이 지나자 해결되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 봤는데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한 걸로 보아 사료가 바뀌어서, 환경이 달라져서, 원래 면역력이 약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름대로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해볼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고양이는 놀거나 싸우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