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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작 Dec 25. 2016

고요한 밤

은가루처럼 눈이 떨어지는 새까만 밤. 

아무런 소리없이 떨어지는 눈을 보고 있으면 

그날 밤이 떠오른다. 

아무런 소리없이 함께 있었던 그 밤.


4년 전 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막 시작되는 그런 시기였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진 후 지하철 종점역인 우리 집으로 가던 중

운행시간이 다 되어 도중에 내려서 우리 동네 쪽을 향해 걸어가던 중이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대로에는 검은 밤하늘과 주홍빛 가로등, 

오가는 자동차들의 전조등 빛, 그리고 취해서 몽롱한 내가 있었다. 

긴 혓바닥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가로수 옆에 검은 비닐 봉지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무언가 담겨있는 듯 꽉 메어진 커다랗고 검은 물체.

무심코 눈길을 돌리며 계속 걸어가는데 

머리보다도 눈이 먼저 인식했다.  

비닐 봉지인 줄 알았던 그것은 고양이였다. 

까만 털과 군데군데 흰줄이 섞이 고양이

가로수 옆에 널부러져 누운 고양이의 몸,

그리고 얼굴은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린 찡그린 듯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마치 은행이 떨어져있듯이 툭 하고 떨어져있는 고양이의 시체였다.


처음에는 안고 동물병원에 갈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런데 손도 댈 수가 없었다. 

좀비 영화에서 나오듯 고양이가 내 팔을 콱 하고 물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굳은 얼굴도 무섭고 커다란 고양이 몸 전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꾸만 이상한 상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냥 떠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늦은 시각이라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서에서는 내 설명을 듣더니 동물 사체 처리와 관련해서 

구청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담당 과가 있다며 

친절하게 번호를 알려주었다.

조금 자신감을 얻고 알려준 담당과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분은 남자분이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나는 주변의 큰 건물과 가게들을 이름을 대며 설명하였다. 

담당자인 분은 접수가 되었고 자신들이 수거하러 갈 건데 

한 40분 정도 걸릴 거라며 

밤이 늦었으니 먼저 가라고 했다. 

자신들이 수건한 후 결과는 문자로 보내주겠다며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은 후 무사히 해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쭈그리고 앉았다. 

어쩐지...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길거리에 죽어서 누워있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고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한창 에코백. 손수건에 꽂혀서 샀던 것 중 하나였다. 

시체에 손수건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앉아있는 동안 늦은 밤이라 그런지 

간간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디가 아프냐며 종종 말을 걸었고

사정을 들은 후 함께 있어줄까요?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혼자 앉아있었다. 

정신은 밤처럼 깊고 차가워졌다.

이런 도시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건 

꽤나 고생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소박하게라도 기쁜 일과 행복한 일이 있었기를 바란다.  

부디 너무 고통스러운 일생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잊히지 않는 밤,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얘기한 밤이었다. 

고요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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