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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톨이 Jul 28. 2016

Short story #2 안녕. 아날로그

주저리주저리 머라고 하는 거니

아날로그는 자연에서 생성된 파장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현한 것 - 다음 백과사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이는 항상 전력 질주다. 이미 35살. 어쩌면 아재인 나이라서 그런지, 아날로그가 그립다. 나에게 디지털은 과속이다. 사진을 찍어 바로 보여주는 디지털카메라의 사진은 그만큼 쉽게 지울 수 있다. 스트리밍으로 듣는 노래는 바로 들을 수 있지만, 그만큼 빨리 지겨워진다. 인스턴트커피는 빨리 마실 수 있지만, 그만큼 향이나 맛에 깊이가 없다. 컴퓨터로 만든 노래는 bounce를 선물하기는 하지만,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은 전달하지 못한다.


난 DSLR을 아끼긴 하지만, 나의 1호 보물 카메라는 FM2다. FM2의 묵직함과 솔직함이 좋다.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았지만, 가끔 골골되는 나보다 더 건강한 녀석이다. 필름 카메라가 담아내는 약간의 멍함이 좋다. DSLR의 정확함과 깔끔함이 한여름에 만난 얼음 잔에 가득 단긴 콜라라면, FM2는 가을에 만난 단풍 아래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같다. 초점이 맞지 않은 것 같은 약간의 뿌연 함, 그리고 멍함. 그것이 주는 느낌을 사랑한다. 또, 기다림이 좋다. 촬영 후 바로 보고 바로 지우고 다시 찍을 수 없음에, 한 장 한 장 집중을 해서 촬영을 하고 인쇄를 맡기기 위해 사진관을 찾고, 인화가 되기까지의 그 시간들과 기다림. 어떤 사진이 나올까 기대하게 되는 하루하루 들. 그 시간과 그 느낌들이 나에겐 아날로그다. 역시 나에겐 아날로그가 정속이다.


오늘도 비지스의 'how deep is your love'를 들으며, FM2에 필름을 풀어 넣고, 레버를 돌려 필름을 감고, 밖으로 나가 나의 세상을 만난다.


안녕.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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