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ian maier 나는 카메라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해. 이건 바퀴야. 일단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 바퀴. 그러면 다른 누군가도 끝까지 가볼 기회를 갖게 되겠지.
- Vivian Maier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너무나 많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유섭 카슈, 로버트 카파 등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사진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은 참 많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만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사진작가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평생 독신으로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평생 남의 집을 전전하였고, 결국 2009년 노숙자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평생 15만 장 이상되는 사진을 찍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관하기 위해 빌렸던 5개의 창고는 결국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에 붙여지고, 그렇게 그녀의 사진은 존 말루프를 찾아갔다. 그녀의 물건들을 처리하기 위해 인화를 하던 존 말루프는 그녀의 사진에 푹 빠지게 되고, 페이스 북에 사진을 올렸다. 비록 사진의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사진들이 세상의 빛을 보던 기가 막힌 순간이었다.
그렇게 비비안 마이어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비밀 투성이다. 그녀의 사진들과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던 아이들과 지인들의 증언만이 그녀의 삶을 살짝 공개했다.
마이어의 놀라운 점은 정식적으로 사진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이어가 어떻게, 그리고 왜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알려진 점이 없다. 다만 사진가의 집에서 지내던 유년기 시절에 사진을 접하게 되고, 그때부터 사진을 찍게 된 것 같다는 추측 만이 있을 뿐이다
마이어는 철저히 외로운 사람이었다.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카메라였고, 그렇게 외로웠던 마이어는 항상 카메라를 목에 메고 다니며 혼자서 수많은 사진을 찍고, 거울,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자화상을 찍었다. 그렇게 마이어는 세상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내가 마이어를 처음 만난 건 작년, 그러니깐 15년, 스냅사진을 찍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서다.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해,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스냅사진을 찍던 시절. 항상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사진이란 세상을 뷰파인더 안에 담아내고, 그려내는 작업인데, 내가 담은 내 카메라 뷰파인더 안의 세상은 왠지 이질적이었다. 뷰파인더 안에 들어와서는 안될 것들과 그림자, 그리고 나와 내 카메라를 의식하는 사람들. 그래서 많은 사진들이 메모리 카드 안에서 피어나지도 못하고 그 생명을 다했다. 그러던 중 마이어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아직도 그날의 충격을 뇌에서 떼어낼 수가 없다. 그녀의 사진들은 사진에 담긴 그 시간, 그 시절, 그 거리, 그 사람 그대로였다. 마치 카메라가 스스로 걸어가 찍거나 카메라가 원래 그곳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빨간 우체통처럼, 사람들에겐 그냥 저 자리에 있어야 할 그런 물건인 것처럼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 당시의 카메라는 지금의 DSLR 보다도 훨씬 커다랗고 묵직했으며, 지금의 디카들은 그 시대 카메라의 렌즈 정도의 크기 밖에는 되지 않았을 정도일 텐데, 어떻게 저렇게 녹아낼 수가 있었을까? 진짜 비비안 마이어 자체가 카메라 같았다.
그날 바로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고, 다행히 월북에서 존 말루프의 'vivian Maier 나는 카메라다'를 번역하여 출판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책을 매번 스냅사진을 찍으러 가기 전에 꺼내어 본다. 그리고 브런치에 너무나 소개하고 싶어 다시 한번 그 책을 읽고, 그녀의 사진들을 죄송스럽지만 내 카메라로 찍어 이렇게 글을 쓴다. 나 혼자 알고 있기에는 그녀는 사진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녀는 흑백 사진을 사랑했다. 물론 컬러 사진도 찍었지만, 흑백 사진이 압도적으로 양이 많다. 역시나 나와 통하는 그녀다. 나도 흑백 사진을 너무나 사랑한다. 특히나 인물의 사진은 흑백으로 찍었을 때 더욱 애잔하고, 멋스럽고, 눈빛이 살아있게 된다.
이렇게 잘 통하는 그녀와 나이지만 하나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그녀는 자화상을 많이 촬영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셀카가 없던 시절 그녀는 길거리의 유리에, 화장실 거울에, 반짝이는 물건에, 공중전화 부스에 비치는 본인의 모습을 많이 촬영했다. 친구가 거의 없었던 그녀는 여행길에서도 카메라를 바위나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본인의 자화상을 찍었다. 그렇게 반사되어 그녀의 렌즈 안으로 돌아들어온 그녀의 얼굴은 슬퍼 보이면서도 기뻐 보이는 얼굴이다. 또 한 번 심오해진다.
그렇게 그녀는 내 어깨를 거칠게 밀어 다시 한번 사진의 세계로 풍덩 빠뜨려 버렸다. 그렇게 사진의 또 다른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버린 나는 오늘도 일을 팽개치고 사진기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나는 카메라다. 적어도 그렇게 되고 싶다.
사진은 월북에서 2015년 펴낸 'Vivian Maier 나는 카메라다'에서 찍어 발췌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써낸 글로, 출판사, 작가와의 의도,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