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를 통해 본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에 대한 색다른 해석
구 사회주의 체제 유럽 국가에서 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일상적인 물건이나 상황도 문화권마다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물론, 동일 상황에서도 나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유럽의 두나라에서 10년간 살았던 경험에 비추어 유니폼이 중부 유럽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생각해 보았다.(과거 유니폼이란 복장 규정이 있었던 전 직장에서의 일화이다.)
갑자기 부서원 모두가 회사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평소엔 무척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1박 2일 부서 워크숍을 떠나기 직전 발생한 상황이다. 난감했다. 나만 캐주얼 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를 나오기 직전 일부러 갈아입었다. 회사 밖에서 유니폼을 입는 게 이상해 보일 것 같았고, 워크숍에 가기 때문이었다.
체코 사람들은 획일적인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어찌 보면 제복은 대표적인 획일화의 상징이다. 나의 경험으로 해석해 보자면, 유니폼 등 획일화는 중부 유럽 사람들이 과거에 겪었던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시절을 연상시킬 수도 있는 것들이다. 획일화는 강제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유니폼도 일정 부분 강제적이다. 사무실 근무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나눠주었지만 거의 입지 않았다. 회사 규정으로 유니폼을 입으라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너무 심한 드레스 코드를 강요하면 집단 반발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러웠다. 대부분 중부 유럽 회사는 캐주얼 복장으로 일한다. 고객과 약속이 있다거나, 외부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등 상황에선 알아서 상황에 맞는 포멀한 복장을 입는다. 획일화를 싫어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제복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아이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부 유럽인들에게도 단체성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때론 획일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황도 있는 것이다.) 워크숍은 직원들에겐 단체성이 부각되어야 하는 행사였다. 그래서, 회사의 정체성을 드러낼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이 행사에 참석하므로 당연한 것이다. 워크숍을 진행한 호텔 내의 다른 손님들에게도 '우리는 XX회사 소속입니다.'라고 드러내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 같았다.
반대로 한국에선 평소엔 정장 등 회사에서 정해 준 옷을 입다가, 워크숍에 갈 때는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온다. 복장만 놓고 본다면, 한국 직장인은 평소엔 조직 구성원임을 늘 자각(유니폼 등 회사가 정한 복장 규정)하고 있다가 워크숍과 같은 자유로운 의사 개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발상이 필요한 경우에는 개인적 성향(캐주얼)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중부 유럽인은 평소엔 개인주의 성향의 조직생활을 하다가 공동체 의식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만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자유 복장이 일반화되고 있으므로 이 글은 조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었다. 다만 애초에 복장 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중부 유럽 회사들과 비교해 보면, (또는 있는 복장 규정도 애써 지키지 않는 중부 유럽인들을 생각해 본다면) 사고의 출발이 달랐던 것이다. 최소한 지금도 복장 규정이 있는 한국 회사나 때론 지나치게 보수적인 복장 규정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