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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건 Apr 28. 2023

이태원에서

몇몇 시절이 정신없이 흘렀으나 여전히 선명한 기억이 군데군데 있다. 학회 끝나고 친한 누나가 핼러윈에 뭐 하냐고 물어봤던 일, 나는 핼러윈에 뭘 해본 적 없어서 별일 없다고 답하니 이태원엔 가질 않느냐고, 자기가 어릴 땐 매번 이태원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일, 그게 작년 가을이다. 정작 나는 이태원에는 들를 일이 없었지만 6호선을 타고 이태원을 거쳐 집에 돌아올 일이 잦았다. 늦은 저녁에 탄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이태원 인근을 거치면서 갖가지 분장을 한 사람들이 우르르 타서 조금 놀라고 오싹했던 기억이 두 번 있고 그중 하루는 10월 29일이었다. 지상에서는 누구의 호흡이 끊어졌고 누구는 심폐소생술에 땀흘리고 있던 시점이다. 집에 다 와서 뉴스를 봤다. 지하철의 어수선한 공기 속 공포가 감각되기 시작했다. 친한 누나는 그날 이태원에 가질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올해 들어서 이태원에 갈 일이 몇 번 있었다. 이태원역을 기준으로 남단에 있는 비건 식당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해밀턴 호텔을 등지고 식당으로 가는 길, 다시 해밀턴 호텔 방향으로 올라와 역으로 가는 길 모두 이전과 달리 어색했다. 시간이 흘렀고 다름이 없었다. 죽음의 흔적이 없었다. 믿지 못할 일, 뜬소문과 다르지 않았다. 도로와 건물이 그대로인데 시대는 어떻게 죽음을 기억하나? 어서 잊히고 지워지길 기다리는 것 아닌가?

 지난 토요일에야 골목 구석의 추모공간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편안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포스트잇이 다수, 애도의 메세지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골목은 이국적이고, 바람이 잘 들어 시원했으며 행인이 거의 없었다. 대로에 비치는 햇살이 닿지 않아 그늘진 골목에서 나는 종종 그렇듯이 살아있음을 감각했고 거기에 따라붙는 약간의 죄책감, 기억의 책임감, 무게감을 느꼈다. 내가 기억하는 만큼 그 기억의 무게를 느끼는 만큼 기억의 힘이 세질 수 있다면, 하고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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