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간첩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아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노무현이었으나, 영화는 1년 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한 문재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노무현은 스스로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는 문화산업을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지원했다. 엔딩크레딧에는 문체부 이름이 항상 올라갔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이 이 영화를 보고 "쯧쯧" 혀를 차며 굉장히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박근혜와 김기춘에 의해 쫓겨난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의 증언이다. 김기춘은 유 전 장관에게 "그런 걸 만드는 회사를 왜 제재를 안 하느냐"고 다그쳤다고 한다.
<변호인>을 만든 제작사는 '위더스필름'이고 배급사는 'NEW'다. 그런데 김기춘이 "왜 제재를 안 하느냐"고 다그친 회사는 CJ라고 한다. CJ창업투자가 <변호인> 투자사 중 한 곳이었기때문이란다.
김기춘이 <변호인>을 'CJ영화'라고 인식한 배경에는 2012년 대선 직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동법 등 각종 개혁조치를 밀어붙이고 명청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치면서 당파세력과 기득권세력들로부터 핍박당하는 영화 속 '광해'의 모습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닮았다는 얘기가 파다했고, 심지어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노무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만든 CJ가, 대선 뒤에는 아예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단정하고, CJ에 대한 제재를 다그친 셈이다. 물론 이유는 더 있다. tvN <SNL>에서 방송되던 '여의도 텔레토비' 등 정치풍자 프로그램도 CJ가 박근혜, 김기춘 등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원인이었다.
이렇게 정권의 눈밖에 난 CJ는 나름 시련의 시기를 보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청와대로부터의 압박에 못이겨 경영에서 손을 떼야 했다.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이른바 '국뽕영화'라는 말을 듣던 영화의 투자와 배급에 CJ가 앞장섰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였던 '창조경제'의 홍보에 CJ의 거의 모든 계열사, CJE&M의 거의 모든 채널이 동원되기도 했다. 아니, '동원'이 아니라 '자발'이었다. CJ는 박근혜 정부 내내 알아서, 스스로 빡빡 기었다.
5월 30일, 문체부가 작동시킨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됐다.박영수 특검팀은 조 전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시간 있을 때 혼술남녀,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나 삼시세끼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특히 <혼술남녀>에 대해 "요즘 혼자 술 마시는 젊은이들 분위를 그린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하니, '혼밥'을 즐기는 솔로 여성 대통령에게 나름 엄선해서 추천한 것 같다.
셋 중 <혼술남녀>, <삼시세끼> 2개 프로그램이 CJ E&M의 프로그램이다. 권력의 은밀한 내부에서는 CJ를 괴롭힐 여러 방법을 찾아서 작동시키고, 그 권력자들이 사생활 속에서는 CJ의 콘텐츠를 즐겼다니 엽기적 풍경이다.
북한의 권력자들이 미국과 남한의 문화 유입을 철저하게 단속하면서 내밀하게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그런 류의 소문을 접했을때와 유사한 느낌이다. 어렸을 적 우연히 옷장을 뒤지다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과도 닮았다.
말 그대로, 박근혜와 조윤선의 이중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