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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옷을 잘입으면, 즐거운 일이 생긴다

10년만에 만난 두 명의 사람들. 우리는 서로를 옷으로 증명했다.

by 알렉스키드

건설업계에서 전혀 다른 필드로 직장을 옮긴 뒤로는,

마주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업 고객사 초청으로

삼성역 프레젠테이션 행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겠지만,

공공홍보인 내게 특별한 인연이 있을리가


그저 평소처럼 울 소재의 재킷,

니트 타이, 테이퍼드 팬츠에 구두를 신었다.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누군가 내 등을 툭 친다


전 직장 후배,

깔끔한 수트에 안경을 낀 젠틀한 영업맨

외국 생활이 가져다준 매너가 썩 멋지던 그 친구


꾀죄죄하지 않게, 젠틀하게 웃으며 명함을 건냈고,

10년만에 본 후배 역시 그때처럼 깔끔한 수트를 입고

내게 흡족(?)한 인사를 건냈다

“선배는 여전히 옷을 잘 입으시네요. 멋져요.”


마치 십년전 우리가 서로를 칭찬하던 것처럼,
서로가 지켜온 세월의 모습이 서로 대견하다는 듯


수트를 입으면서 개성을 표현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축구 클럽 엠블럼이 담긴 타이를 추천한다. 소년미를 수트안에 채우는 기분이 제법 유쾌하다.
옷과 마케팅에 대한 회의는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바로 “허상”과 “누림”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미세한 차이인데, 사회 생활을 할수록

그 차이에 대한 분명한 경계가 보인다.


가장 옷을 잘입는 사람은 나를 세일즈하는 사람이다

일상 자체가 영업인 이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무드를 갖추기 위해

옷을 입는 사람이 진정으로 섹시해보인다는 것.


그런 일상의 디테일에도 신경쓰는 사람이 진짜다.
어떤 배경을 얻어도 기어코 나를 증명해내고 마는,
단체보다 내가 부각되도록 힘을 갖춘 그런 사람.


신기루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필드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대다수는 옷을 잘입는다

직업에 맞게. 요구되는 이미지 그 이상으로.


10년만에 만난 영업맨 후배는,

그때보다 잘 성숙해진 와인같은 모습이었다.


타이를 해야만 반듯한 것 아니다. 테이퍼드 팬츠에 니트 소재 반팔, 어깨에 두를 얇은 가디건 한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종료된 뒤, 나가던 행사장 복판
놀랍게도 10년만에 만난 멋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갑의 위치에서 contender가 되어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굴함 없이 기품이 흘러넘쳤다


국내외 대기업, 명품 브랜드에게 90도 인사를 받던

10년전보다 더욱 멋져보이던 그의 모습.


명함으로 승부를 보는게 30대라면,

40대엔 그 토대를 가지고 나의 일을 해야한다는

이론을 그는 온몸으로 부여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로고를 전혀 노출하지 않는 그의 자켓과 구두에서,

‘어떤 브랜드인지’ 알 수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내가 누군지 숙이지 않아도 모두가 찾아오게하는

당당하고 기품있는 그 모습처럼.


골반부터 무릎까지 잘 맞는 단단한 팬츠를 한벌 사두면, 몸이 얼마나 잘 유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준이 되는 핏을 찾아두자는 말이다. 풀어지지 않도록. 자세든 정신이든.


안주같은 인생을 혐오해야한다는 마음이

조금씩 드는 요즘, 주접만 남는 술자리를 싫어하는

스스로의 철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거울 같은 두 사람을 10년만에 만났다.


여전히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적어도 5분간의 재회에서만큼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게해준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돈되어 있는 그들과 나

그리고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졌던 10년


흐트러진 모습으로 만났다면

얼마나 내가 그들에게 실망을 줬을지- 아찔하다

이래서 옷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가장 빠른 길


10년간 신은 구두들이 많이 닳았다

좋은 일을 만나 보내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삶을 잘 꾸미는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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