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임님, 혹시 영포티 아세요?“

안다고하면 그것도 트렌드에 민감한 척 하는거니

by 알렉스키드

대학생 인턴과 잠시 업무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마치고 보니, 꼼데 가디건을 입고 있더라


사회 초년생 때 일본 가면 꼭 사오던 꼼데(PLAY), 요즘도 젊은 분들이 입길래 신기했다.
남이 입고 있는 옷 평가하는 사람은 아닌데, 반가운 마음에 스몰토크를 건넸다.


"저도 꼼데 좋아해서 몇 벌 있는데, 요즘 못 입어요."

"왜요?"

“(웃음) 왜 냐구요? 저 영포티라서요.”

그가 화들짝 놀래며 대답했다.

어, 책임님! 영포티를 아세요?


같이 빵 터지게 웃고난 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영포티라는 단어, 잘 쓰면 적당한 희생(?) 번트 같은 유머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주효하구나. 사실 영포티 단어에 반감이 별로 없어서, 웃는 것 외 별 감정은 없었다.


잠시 후 문득 스치는 의문 하나.

이런 유명한 단어를 모를거라고 생각했나?


그러면서 이런 생각에 미쳤다.

영포티라는 "단어를 안다는 것" 자체로,

혹자가 조롱하는 ‘트렌드에 민감한 척’하는 부류의 인간으로 나뉘게 되는건가?


영포티(또는 그냥 포티) 여러분, 어쩌면 젊은이들은 우리가 영포티로 불리는걸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나봅니다.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세대인데 말이죠.


나이가 마흔이 넘고, 아이둘을 낳게 된 후로 나는 스스로 아저씨임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근데, 그게 당연한거 아닌가? 내가 아저씨가 맞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그때부터 생각했다. 어디까지가 영포티일까?

영포티라는 '추한 중년'이 안되려면, 뭘 조심해야 할까?


사회 생활 초년생부터 늘 '후배'들에게 조심하자지만, 어느 순간 후배들에게 농담을 건내거나,
예전 이야기를 하는 내 모습이, 퇴근 지하철 창문 너머 제 3자의 시점으로 보여질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이게 맞나.. 라는 고민을 하다가, 요즘 터진 '영포티'라는 개념을 곱씹게 되었다.




모든 단어는 흥망성쇠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좋은 단어는 결국 가장 나쁜 단어가 될 확률이 높다는 거다


요즘의, 아니 오늘의 단어, "영포티"

요즘 40대인 내 또래들 사이에서 전례 없는 이목을 끄는 단어


10여년 전 마케팅 용어로 등장한 영포티는, 제법 그럴듯한 개념이었다


기성세대와 달리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 능하며 적당히 옷도 갖춰 입고
젊은 층과 공감대가 있는, 단군 이래 가장 젊은 소비력을 갖춘 40대 집단


돌아보면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2011년, 40대 과장, 차장님들이 그 느낌이었다.


대학생 시절에 멋을 냈는지, 귀를 뚫은 흔적

태그호이어 시계를 차고 아이폰을 사용하는 젊은 감성

노타이에 폴로 셔츠를 입고 가죽 구두를 신는 센스

담배냄새보단 향수 냄새가 은은히 나는 깔끔함

믹스커피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취향

탈권위를 표방하며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리더십


이렇게 존중의 의미였던 영포티들이,

불과 십여년만에 "추하게 늙은 어른의 전형"으로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즐거웠던 게 뭐냐고 물어보면, 파리에서 셔츠에 타이, 구두를 신고 걸어다닌 일이었다고 할만큼 난 옷을 좋아한다. 스투시 티셔츠가 없어서 다행인 포멀한 룩 이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42세인 내게 영포티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적당히 일리도 있다!


물론 스윗 영포티는 싫다. 너무너무 싫다.
그런 사람 몇몇 보는데.. 손이 오그라든다 으악!


영포티를 겨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보면

심플한 그들의 시선이 제법 그럴싸한 근거가 있다


영포티라는 단어를 쓰면서, 특정한 인간 부류를 그 단어로 규정짓는 이유?


"정상의 범주"를 넘을만큼 나이에
안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꼴보기 싫어서다


즉, 모든 40대에 대한 질타가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자문해보자.

왜 20대 때처럼 계속 조명 받고 싶은가?

나이가 들면, 당연히 20대 때 누리던 것들에게서 멀어져야 하지 않나.

현실을 못 받아들이니까, 영포티라는 굴욕적인 손가락질을 받는 면이 있다.


나이와 격에 맞게 놀아야지.. 가봐야 구석 자리나 겨우 내어줄 성수 같은 곳
무리하게 찾아가서 젊은 애들 기웃대며 옛날 얘기 하는거? 부끄러운거다


그런 곳에 눈치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젊은이들의 이목은 이렇게 외칠거다.


이모, 여기 영포티 추가요!


영포티라는 단어를 안고 사는 소심한 아제의 삶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당연히 픽션이고, 우연의 일치들입니다. 심각할 이야기는 없고 그냥 자화상 같은 글이예요. 또래들과 함께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며 넋놓고 얘기하는 그런.


keyword